[UP코리아]제2부 남을 배려합시다<7>아파트 공동체문화 복원

  • 입력 2005년 5월 13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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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 담배꽁초는 싫어요. 아름다운 시흥 나무로 가꿔 주세요.’

10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1동 성지아파트 앞길. 아파트 주민인 민경랑(48·여) 씨는 40대 남자가 무심코 담배꽁초를 버리려다 나무에 걸린 이 같은 내용의 표지판을 보고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표지판은 민 씨가 얼마 전 주민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 걸어놓은 것.

민 씨는 성지아파트 주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시흥1동 지킴이’의 멤버다. 2000년부터 아파트 앞길을 청소하고 화단을 가꾸는 데 열심이다.

“이웃과 함께 동네를 가꾸는 일을 5년째 같이 하다 보니 주민이 서로를 가족처럼 배려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고 민 씨는 말했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 주거 형태.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5000만 명에 육박하는 남한 인구 가운데 60%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하지만 아파트는 주민 간의 소통 단절이 심한, 삭막한 문화의 상징이다. 소음, 주차, 쓰레기 문제로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를 훈훈하게 바꿔 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슷한 주거공간에 사는 연대감을 바탕으로 주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해결하면서 잃어버린 ‘이웃사촌’ 문화가 살아난 것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의 제일비사벌 아파트. 한때 이 아파트의 쓰레기 수거장은 어느 누구도 돌보지 않았다. 심한 악취와 더러움으로 주민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보다 못한 주민 20여 명이 지난해부터 스스로 청소를 하면서 지금은 수거장 주변이 깨끗해졌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통해 신뢰를 회복한 주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변 교통을 정리하고 인근 재활원을 찾아가는 자원봉사로 이어졌다.

부녀회장인 유기자(49) 씨는 “처음엔 코웃음 치던 한 주민이 이제는 퇴근길에 습관처럼 화단에 들어가 잡초를 뽑는다”면서 “살기 좋은 아파트로 소문이 나자 이사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인 ‘아파트 주거문화개선 시민운동본부’의 성장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2001년 아파트 소음 피해자 20명으로 시작했던 이 단체는 현재 회원이 5만2000명으로 늘었다. 소음 문제에 국한됐던 관심사도 ‘아파트 공동문화 복원’으로 넓어졌다.

이 단체대표인 홍성표(洪聖杓·자영업) 씨는 “아파트는 주택보다 물리적 거리가 더 가까워 생각만 바꾸면 훨씬 친밀한 이웃이 될 수 있다”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리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다는 믿음을 공유하면 아파트는 최고 주거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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