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日王-장쩌민 첫 만남

  • 입력 2005년 4월 6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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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꼭 방문해 주십시오.”

1992년 4월 7일 일본 도쿄(東京) 황궁(皇宮).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 장쩌민(江澤民)은 아키히토(明仁) 일본 국왕과 회담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쩌민의 방일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이후 중국 수뇌부의 첫 서방국가 나들이. 민주화 시위를 탱크로 진압한 중국 정부는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었고 그 돌파구의 하나로 일왕의 중국 방문이 필요했다.

장쩌민이 방일 직전 베이징(北京) 주재 일본 특파원단과 만나 “일왕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과거사 사죄의 표현 문제는 전적으로 일본 측에 맡기겠다”고 말했을 정도.

일본 정부로서도 일왕의 방중은 과거 청산의 호재였다. 아키히토 일왕은 1991년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과거사 사죄 순방’을 했고 특히 1992년은 일중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

아사히신문은 아키히토-장쩌민 회담 다음 날인 4월 8일자 사설을 통해 ‘일왕의 방중이 중국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일본 내 보수 우익의 주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익세력의) 이런 소리에 끌려 일중 관계의 ‘소이(小異·약간 다름)’가 ‘대이(大異)’로 돼버려선 안 된다. 천황(일왕)의 방중은 중국의 거듭된 초청에 응해 순수하게 실현시키는 것이 옳다.”

그로부터 6개월여 뒤인 10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중국을 공식 방문해 장쩌민과 재회했다. 그의 방중은 일왕으로서 사상 처음. 그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일본)가 중국 국민께 심대한 고난을 준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 이는 제가 깊게 슬퍼하는 것”이라며 사죄했다.

아키히토 일왕과 장쩌민의 첫 번째, 두 번째 만남은 이처럼 비교적 ‘좋은 인연’이었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좋은 오늘’은 ‘좋은 내일’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1998년 11월 26일 다시 일본 도쿄의 황궁. “일본 군국주의는 대외침략전쟁이란 잘못된 길을 걸어 아시아 인민에 큰 재난을 입혔다. 우리 모두는 이 아픈 역사의 교훈을 영원히 새겨야 한다.”

중국 국가주석 자격으로 일본을 다시 방문한 장쩌민은 아키히토 일왕 주최 만찬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일본의 끊임없는 과거사 망언과 역사 왜곡에 대해 쌓였던 분노를 터뜨린 것. 흥겹던 만찬장은 금세 얼어붙었다.

아키히토 일왕으로서는 장쩌민과의 이 세 번째 만남은 없었어야 좋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피해국에 진정으로 사죄하지 않는다면 어제의 ‘좋은 인연’이 오늘의 ‘잘못된 만남’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 없을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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