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여론과 ‘선거법 재판’

  • 입력 2005년 2월 2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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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10부는 정치권, 특히 현 여권에서 ‘저승사자’로 불린다.

선거법을 위반한 총선 당선자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이후 이 재판부에서만 현역 의원 3명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모두 여당 소속이었다.

그중 1명이 지난해 9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은 이상락(李相樂·열린우리당) 전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항소심 형이 확정돼 구속 수감됐다. 그만큼 선거사범에 대한 이 재판부의 판결은 엄격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이런 엄격함은 여권 지지층의 비난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재판부가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된 재판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 인터넷 매체는 재판부 소속 판사의 실명을 거론해 누리꾼(네티즌)들의 무분별한 공격에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난은 근거가 박약했다. 그때까지 이 재판부에 배당된 정치인은 모두 여당 소속이어서 야당 정치인과의 비교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1일 이 재판부는 이 전 의원과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장경수(張炅秀·열린우리당) 의원에 대해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물론 두 사안은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저승사자’라는 세평과는 다소 어긋난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금은 정치권력보다는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더 중요하다”라며 “그럴 용기가 없으면 법관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다. 일각의 근거 없는 비난이나 정치권력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우려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 선거법 위반 정치인들에 대한 재판이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이후 ‘벌금 80만 원’ 판결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이후 선거법 위반 현역의원에 대한 재판에서 여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선처가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결과는 대법원이 지난해 총선 당시 “선거사범 재판을 엄정하게 하겠다”고 말했던 것과도 차이가 난다.

행여 법원이 여론의 근거 없는 비난에 영향을 받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조용우 사회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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