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70>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28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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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소문과는 달리 초나라 대군의 추격은 그리 급하지 않았다. 한왕 유방이 한신과 함께 형양성(滎陽城)에 들고도 이틀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옹구(雍丘)에 머물던 조참(曺參)의 부대가 초군의 선두와 접촉하였다는 전갈이 왔다. 추격하는 군세도 소문과는 달랐다. 패왕이 직접 10만 대군을 이끌고 뒤쫓아 온 것이 아니라, 그 장수 용저(龍且)와 종리매(鍾離매)가 먼 길을 걸어와서 싸울 준비도 안 된 7만 군사를 이끌고 왔을 뿐이었다.

패왕 항우는 아직도 유방과의 쟁패전을 전체로서 아울러 보는 눈이 없었다. 길고 복잡한 전쟁의 과정을 하나하나의 전투가 그저 합쳐진 걸로만 보고, 그 하나하나의 승패로 그 전투는 그때그때 완결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 패왕에게는 전투능력이 바로 군사적 재능과 같은 말이 되었다. 따라서 팽성 인근의 전투에서 거둔 잇따른 승리로 품게 된 무적불패(無敵不敗)의 환상은 유방과의 천하를 다투는 전쟁에서 이미 이겼다는 착각까지 일으켰다.

“대왕께서는 지금 한판 싸움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유방과 천하를 다투는 전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백만의 적군을 죽여도 이긴 것은 아니며, 천하의 땅을 다 아울렀다고 해도 이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직 유방이 죽어야 대왕은 참으로 이긴 게 되고, 이 전쟁도 마침내 끝나게 됩니다.”

수수의 싸움에서 이긴 뒤에도 범증은 그렇게 패왕을 다그쳤으나 패왕은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유방의 목은 이미 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낭중지물]이나 다름없소. 언제든 잡아다 베어버릴 수 있으니 아부(亞父)께서는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그러면서 군사를 갈라 한왕을 추격하는 것이나 허락할 뿐, 자신이 팔을 걷고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패현으로 뒤쫓아 간 군사들이 한왕의 부모인 태공(太公) 내외에다 여후(呂后)까지 잡아오자 더욱 느긋해졌다.

“유방이 오죽 급했으면 부모처자까지 내팽개치고 달아났겠소? 제 놈이 용케 싸움터에서 빠져나갔다 해도 아비어미와 계집을 볼모로 잡고 부르면 과인에게 아니 오고 배겨 내지는 못할 것이오. 저들이나 군중(軍中)에 잘 가둬 두시오.”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군사를 물려 팽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범증이 놀라 그런 패왕의 옷깃을 잡듯 하며 말렸다.

“대왕 아니 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유방을 뒤쫓아 그 숨통을 거두어 놓아야 합니다. 저 홍문(鴻門)에서처럼 다시 유방을 놓쳐 관중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다음에는 우리가 유방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범증이 그렇게까지 나오자 패왕도 웃음기를 거두었다.

“알았소. 그럼 용저와 종리매에게 각기 3만 군사를 주어 유방을 뒤쫓게 하고 따로 환초에게도 1만 군사를 주어 있을지 모를 변화에 대응하게 하겠소.”

“아니 됩니다. 대왕께서 직접 대군을 몰고 가시어 이번에는 끝을 보셔야 합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올까 싶지 않은 호기이니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하늘이 대왕께 내리시는 것을 거두지 않으시면 하늘의 노여움에 앙화를 입을 것입니다.”

그래도 범증은 패왕이 직접 가기를 거듭 재촉했다. 하지만 패왕은 들어주지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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