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남기고 자살한 순직해군 부인에 네티즌 추모글 봇물

  • 입력 2004년 12월 28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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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미니홈피
김씨의 미니홈피
“예쁜 딸 낳고 재밌게 살자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네요. 애타게 불러도 안 들리나 봐요.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의 추억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 하나요.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어요.”

지난 10월 훈련 중 순직한 남편을 그리워하다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군상사의 부인 김 모씨. 그가 자살하기 하루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이 누리꾼(네티즌)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숨진 오길영 상사의 부인 김모(28)씨는 성탄절인 지난 25일 낮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우리였어요’라는 글을 올려“마음에 담고만 있자니 터져 버릴 것 같다”며 먼저 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놓았다.

이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 저승에서라도 이루시길 바란다”는 애도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아이디가 ‘navy223’인 누리꾼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그토록 사랑한 남편을 만나소서. 이 땅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이라며 추모했다.

‘rich_4you’는 “항상 남편에게 돈 벌어 오라고 타박만 했다”며 “제게도 남편이 전부인데, 왜 그렇게 욕심만 부렸는지,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thegreat39’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 사랑의 지고지순함에 머리숙여진다”면서 “다만, 다른 분들은 같은 상황을 당해도 부모님과 주위분들의 심정도 생각하셔서 꿋꿋하게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chody96’는 “김씨의 괴로움을 모두가 덜어 주었으면 이러한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가를 위해 순직한 분들의 유족을 우리 모두가 보살펴 주는 시스템이 됐으면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씨의 미니홈피 방명록에는 28일에도 누리꾼들과 지인들의 애도 글이 계속됐다. 그러나 주인 없는 홈페이지에는 가수 박효신이 부른 ‘눈의 꽃’만 처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김씨가 죽기 전날 올린 글에는 오 상사와의 첫 만남과 8개월간에 걸친 연애, 신혼 생활 등 두 사람이 함께한 1년 6개월의 추억이 애틋한 어조로 담겨져 있다.

김씨는 이 글에서 “만난지 일주일 후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승낙하자, 그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길거리에서 ‘야! 나도 애인이 생겼다!’고 소리까지 지르더군요”라고 회상했다.

김 씨는 “첫 키스도, 그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오래 탄 것도, 그 와의 추억 모두가 내 인생의 처음 있었던 것들”이라며 “우린 만난지 8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지난 10월 12일 오 상사에게 1박 2일의 훈련이 떨어졌다. 그는 다른 날과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출근했고, 12시 40분쯤 ‘이쁜이! 내다! 점심 먹었어?’라고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김씨는 “새벽에 꿈을 꿨는데, 그가 사고가 났다며 다친 몸으로 피를 흘리며 다가와 깜짝 놀라 깼다”고 밝혀 오 상사의 사고를 직감했음을 짐작케 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제발 살아만 있어”, “귓가에 그의 목소리만 맴돌고”, “정말 없는 건가”,“어떻게든 다시 돌아 올 거라 믿고 죽고 싶은 순간을 버텼다”는 등의 말로 당시의 비통한 심정을 표현한 김씨.

김씨는 “그가 전부였어요. 날 완전 바보로 만들어 놓고 그렇게 갑자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요”라며 오 상사의 빈자리를 허탈해 했다.

김씨는 끝으로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말고는 욕심 없어요. 돈 따위 다 필요 없어요. 여러분 내일은 아무도 몰라요. 오늘만 죽을 힘을 다해 행복해 지세요”라며 절절한 글을 마쳤다.

글을 마친 김씨는 미니홈피 사진첩에 ‘그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오 상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차례로 올렸다.

다음날인 26일 오전 7시 40분. 김씨는 창원시 대원동 모 아파트 1층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김씨에게 자녀는 없다.

특수선 기관장이었던 남편 오 상사는 울산 앞바다에서 해안 침투대비 훈련 중 선박이 침몰해 동료 3명과 함께 변을 당했으나, 현재까지 유해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오길영 상사 부인 김씨의 미니홈피 글 전문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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