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시절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에 맥도널드 새 매장이 차례로 들어설 때마다 몰려드는 인파로 큰 소동이 벌어졌다. 모스크바 중심가에 문을 연 1호점 앞에 늘어선 긴 줄은 한때 개방의 상징이었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절대 음식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식료품을 사기 위해 하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려도 물건이 바닥나 허탈하게 돌아섰던 공산주의사회에서의 경험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맥도널드에 ‘감동’했다.
▷상술과 기업전략도 놀라웠다. 가격표마다 ‘미소는 무료’라고 써 붙였다. 국영 식당의 느려 터지고 불친절한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부각시킨 것이다.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싹싹하게 인사를 건네며 손님을 맞고 능숙하게 ‘빅맥’을 주는 풍경은 옛 소련 국민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곳곳에 새 매장을 낸 것도 알고 보면 치밀하게 계획된 부동산 투자였다. 오늘날 러시아 주요 도시의 핵심 상권마다 맥도널드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런 러시아에서조차 최근 맥도널드의 명성은 떨어지고 있다. 맥도널드를 둘러싼 마피아조직의 ‘구역 다툼’ 끝에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커피에 화상을 입은 30대 여성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노사분규를 통해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드러났다. 개방의 상징 맥도널드에 열광하던 러시아인들이 이제 이면에 가려졌던 ‘또 다른 진실’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맥도널드를 통해 배운 화려한 자본주의가 늘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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