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31>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15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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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쪽을 쪼개듯(16)

“수공(水攻)입니다. 이곳 폐구는 위수(渭水)가에 자리 잡은 성으로서 상류로 20리만 가면 두 갈래 물길이 합쳐지는 곳이 있습니다. 그 위 두 물줄기에는 좁은 계곡이 많아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물을 가둘 수 있는데다, 마침 가을비로 강물까지 불어있으니 수공을 한번 펼쳐볼 만합니다. 먼저 군사들을 그리로 보내어 두 물줄기를 막고, 이곳의 위수 물길을 폐구성 안으로 돌리게 한 뒤에 한꺼번에 터뜨리면 폐구성은 함빡 물에 잠기고 말 것입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배와 뗏목을 풀어 물에 빠진 장함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한신의 그와 같은 대답에 한왕 유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신은 곧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에 불러 모으고 영을 내렸다.

“장군 번쾌와 조참은 군령을 받도록 하시오. 번 장군은 군사 3000을 이끌고 폐구 서쪽 30리 되는 곳으로 가서 위수 본류의 흐름을 막으시오. 어귀 좁은 계곡을 골라 흙모래를 담은 가마니와 자루로 둑을 쌓으면 이틀 안으로 많은 물을 가둘 수 있을 것이오. 조 장군은 또 다른 군사 3000을 이끌고 폐구 서쪽 20리 되는 곳에서 위수로 흘러드는 지류를 막으시오. 번 장군과 같이 물을 가두되, 이틀 뒤 정오에는 양쪽이 한꺼번에 둑을 터뜨려 폐구를 쓸어버릴 수 있어야 하오.”

그리고 다른 장수들에게도 각기 할 일을 일러 주었다.

“장군들은 이제부터 대군을 풀어 위수를 끊고, 크고 넓은 도랑을 파서 그 물길을 폐구성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하시오. 또 모든 장졸들에게 큰 모래주머니 하나씩을 만들어 지니게 했다가, 이틀 뒤 날이 새거든 그것들을 폐구 성안으로 돌려진 위수의 물길 동편에 쌓아 많은 물이 일시에 성을 휩쓸도록 하시오. 그 밖에 오월(吳越)에서 와 물질에 능숙한 장졸들은 배와 뗏목을 마련하고 기다리다가 때가 오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적병을 건져 올릴 수 있도록 해주시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영과 하후영, 주발에게는 기병(騎兵)과 전거(戰車), 그리고 잘 조련된 보갑(步甲)을 거느리고 성안의 돌발적인 반격에 대비하게 하였다.

장수들이 모두 명을 받고 떠나자 한신이 다시 한왕을 찾아보고 말했다.

“이번에 폐구성이 떨어지고 옹왕 장함이 우리에게 사로잡히면 항왕의 귀에도 그 말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왕의 군사가 함곡관이나 무관을 넘으면 항왕은 놀라 대왕을 돌아보며 대왕을 억누를 방도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항왕에게는 패현에 있는 태공(太公) 내외분과 왕후마마, 그리고 두 분 금지옥엽이 대왕을 얽어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질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분들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할 때가 된 듯합니다.”

하지만 한왕은 느긋하기만 했다.

“나를 따라 싸움터를 떠도는 장졸들 중에 가솔들까지 돌볼 틈이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소? 더구나 아직 장함을 이기지도 못한 터에 왕인 내가 먼저 가솔들부터 챙긴다면 누가 바로 보겠소? 그 일은 폐구성을 떨어뜨리고 장함을 사로잡은 뒤에 다시 의논해도 그리 늦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서 무겁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에 한신도 더는 우기지 못하고 폐구성을 수공(水攻)하는 일에만 힘을 쏟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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