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화성/한국축구의 ‘카리스마 망령’

  • 입력 2004년 5월 9일 18시 46분


영화배우 최민수의 눈빛은 강렬하다. 검은 정장 차림에 목을 꼿꼿이 세우고 목소리를 낮게 깔면 그야말로 ‘짱’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황산벌에서 ‘거시기’ 역으로 나오는 이문식은 늘 얻어터진다. 툭하면 입술이 터지고 바닥에 나동그라진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히딩크의 골 세리머니는 시원하다. 벤치를 박차고 나오며 냅다 라이트 어퍼컷을 허공에 내지른다. 한 발 내딛으며 한 번, 또 한 발 내딛으며 두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퍼컷 꼬리를 길게 하늘 높이 쳐올린다. 그의 ‘숯 검댕이 눈썹’만큼이나 카리스마적이다.

지난달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에서 중도 하차한 쿠엘류의 골 세리머니는 썰렁하다. 벤치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다가 갑자기 만세 부르듯 두 손 번쩍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웃음보가 절로 터진다. 짧은 목에 구부정한 어깨 그리고 엉거주춤한 폼이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같이 정겹기도 하다.

쿠엘류 후임 감독을 놓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하지만 ‘카리스마 감독’이어야 한다는 데는 한목소리인 것 같다. 쿠엘류가 사람만 좋았지 카리스마가 없어서 선수 장악에 실패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히딩크가 ‘족집게 강사’라면 쿠엘류는 ‘가정교사’다. 족집게 강사에게는 (수능시험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조직적으로 집중해서’ 가르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카리스마형 감독이 좋다. 히딩크는 불같은 열정으로 선수들을 휘어잡았다.

그렇다고 카리스마형 감독이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대체로 독단적이고 주입식이다. 자신의 틀에 선수들을 짜 맞춘다. 자칫 선수들을 ‘공 차는 로봇’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영국의 축구칼럼니스트 랍 휴스는 “히딩크는 한국 선수들의 삶의 방식이나 본성까지 바꾸려 했는데 이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가정교사는 당장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학생의 상상력에 날개가 돋는다. 더구나 쿠엘류가 가르친 학생들은 시험을 코앞에 둔 ‘고3’이 아니다. 어쩌다 시험 한 번 잘 치러(월드컵 4강)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아이들’이다. 배가 부르니 그전처럼 죽자 살자 뛰지도 않는다.

결국 문제는 눈만 높아진 한국 선수들에게 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은 감독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 반면 어릴 때부터 강압적 분위기에서 자라 온 한국 선수들은 감독이 시켜야만 움직인다. 한국대표팀 감독에 왜 카리스마형이 필요한지 설명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이유에서 카리스마 감독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한국 축구는 영영 누가 시켜야만 하는 ‘사역 축구’가 되고 만다. ‘창조적인 축구’는 물거품이 된다.

2002월드컵 이전까지 한국 축구는 입만 열면 ‘잔디축구장 타령’이었다. 그러더니 이젠 ‘카리스마 지도자 타령’이다. ‘팽이’처럼 누가 때려줘야 돌 수 있다는 건가. 너무 자학적이다.

브라질 축구는 시와 같다. 독일 축구는 거친 문장의 산문 같다. 난 한국 축구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 산하에 만발하는 ‘들꽃 같은 축구’가 됐으면 좋겠다.

김화성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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