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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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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눈 가리는 ‘이벤트 정치’ ▼
선거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정당 내에서 이뤄지는 공천이다. 각 정당이 민주적 절차를 거쳐 공천했다고 하지만 후보자 면면을 살펴보면 왜,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 후보자가 공천됐는지 잘 알 수가 없다. 한마디로 졸속공천이 많기 때문이다. 각 정당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공천과정을 공론화할 수 있었다면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인지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후보자들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후보자의 자질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은 참신성, 전문성, 개혁성, 책임성 등이 높은 선량을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후보자들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묻지마 투표’가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성적인 기준에 비추어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초한 투표가 아니라 후보자나 정당이 연출해내는 이미지, 감정, 그리고 이벤트에 휩쓸려 투표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생각하는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꼼꼼하게 후보자의 자질을 비교해보고, 각 후보자가 내건 장밋빛 정책과 공약이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지 알아보고, 각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정책 노선과 이념적 성향을 엄밀하게 대조해봐야 한다. 정치인들의 이미지, 감정적 접근, 그리고 이벤트성 모습들에 더 이상 맹목적으로 끌려다녀선 안 된다.
박근혜 대표, 추미애 선대위원장, 그리고 정동영 의장이 번갈아 연출하는 눈물, 3보1배, 그리고 노인들에 대한 큰절이 TV화면을 가득 채운다. 현명한 유권자는 그들이 연출해내는 동작이 교묘한 득표전략의 일환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의 화려하고 감성적인 유희에 더 이상 희롱당해선 안 된다.
4년에 한 번씩 정당대표들과 선대위원장 그리고 주요 당직자들은 소위 민생투어를 전개한다. 버려져 있던 재래시장, 노인정, 생활보호대상자 그리고 장애인들을 찾아 손을 잡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이벤트를 연출한다.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해 왔던가? 정쟁에만 몰두해 온 정치꾼들이 아니었던가? 무슨 염치로 서민들에게 표를 구걸하는가? 얼굴이 매우 두꺼운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탄핵사태 이후 다른 정치적 이슈가 함몰되고 선거기간의 단축과 합동연설회, 거리유세 폐지 등 개정된 선거법은 후보자와 유권자의 진지한 만남의 기회를 줄였다. 그리고 이미지와 감성이 강조되는 TV와 라디오 연설회가 그러한 만남의 기회를 대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후보자들과 정당들로 하여금 이미지, 감정, 이벤트에 의존하게 하는 것 같다.
▼후보자-정당정책 꼼꼼히 따져야 ▼
17대 국회는 질적으로 16대 국회에 비해 향상돼야 한다. 16대 국회가 부패, 낮은 생산성 그리고 정쟁으로 일관한 낙후된 국회였다면 17대 국회는 깨끗하고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유권자들은 현명해야 한다. 이미지, 감정, 이벤트에 끌려다니는 ‘묻지마 투표자’가 아닌 ‘생각하는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유권자 앞에 정치인들의 현란한 이미지와 이벤트는 무력화될 것이다. 나아가 정책과 공약 그리고 이념이 살아 숨쉬는 선거과정을 통해서만 보다 훌륭한 선량들이 국회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이남영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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