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경제정책 '이분법 사고' 버려야

입력 2003-12-29 18:21수정 2009-10-1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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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2003년은 기나긴 터널이었다.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취업난은 청년의 꿈을 앗아갔다. 대선자금 수사 확대는 기업의 투자심리를 더욱 움츠리게 했다. ‘한국경제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라는 자조적 질문이 나올 만큼 우리 경제는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사정이 이와 같은데 경제활동의 총화(總和)로서의 경제성장률이 높을 리 없다. 3%의 예상성장률도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성장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선 당분간 최소한 잠재성장률만큼은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의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기준으로 볼 때 ‘반타작’에 지나지 않는다.

▼원칙없는 ‘정책과용’ 실패 낳아 ▼

눈을 밖으로 돌리면 위기의식은 더욱 커진다. 재신임 정국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10월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함으로써 우리의 대외 신용등급은 중국에 역전되었다.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인도도 이미 과거의 인도가 아니다. 한편 미국도 저금리 기조와 감세(減稅)정책으로 완연한 경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에 시달려온 일본과 유럽연합(EU) 역시 경기회복 조짐이 역력하다. 후발자는 추격을 가속화하고 선발자는 더욱 앞서가고 있다.

국내외 예측기관에 의한 내년도 우리의 예상경제성장률은 5%대로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최근 들어 호조를 보이는 수출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낙관적 전망에 한숨 돌릴 만큼 한가로운 때는 아니다. 무엇보다 올해의 성장률이 왜 낮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냉정히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우리 경제가 ‘잠재적 능력’마저 발휘하지 못하고 이를 사장(死藏)시킨 데에는 ‘이분법적 정책사고’의 역기능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치른 혹독한 노사대립도 따지고 보면 ‘힘의 중심’이 노동계 쪽으로 좀 더 옮겨져야 한다는 이분법적 정책사고에서 연원(淵源)된 것이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지만, 힘을 결집할수록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노조의 기대가 이미 형성된 뒤였다. 노조는 실리를 얻었지만 ‘조직될 수 없는 노동자’와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을 기다리는 잠재적 노동자는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정책의 골격을 이루는 ‘시장개혁 로드맵’도 독립경영 대 선단경영, 전문경영 대 소유경영의 이분법적 정책사고의 산물이다. 기업은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특정 규제로 몰고 갈 수 없으며, 기업의 사(私)영역은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 대기업 규제가 경제정의 실천은 아니다. 경제정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반(反)기업 정서를 부추겨 기업 활력을 저상(沮喪)시켰다.

경제의 관건은 ‘심리’와 ‘흐름’을 어떻게 매끄럽게 관리할 것인가로 귀착된다. 불확실성이 최소화돼 경제주체가 미래에 대해 예측 가능한 기대를 가질 때 합리적 계산이 가능해져 경제흐름의 마찰이 최소화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책의 본령은 기술이 아닌 순리와 원칙의 문제이다. 그간의 정책실패는 정책을 ‘고도의 기술’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포퓰리즘에 오염된 정책 과용과 설계주의를 표방한 정책만이 횡행했다. 이념의 과잉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경제적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수 없다.

▼ 내년 예산안 ‘시장개입 자제’ 다행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왜 우리 경제의 날개가 꺾였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경제주체의 역량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특정집단과 이념에 경도돼 온 경제운영방식은 리모델링돼야 한다. 정부의 상시적 시장개입은 경제주체의 정부 의존을 타성화시키고 ‘경제하려는 의지’를 꺾을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확정된 내년 예산안이 올해 대비 0.19% 증가한 118조원에 그쳤다는 점이다. 팽창예산이 아니고 정부의 시장 개입 의지를 자제한 것이 눈에 띈다. 정부 고유 영역인 국방과 사회개발에 중점을 둔 것도 긍정 평가할 만하다. 경제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에 정책당국은 인내의 미학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존재이유는 민간의 활력을 북돋우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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