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양궁역사 새로쓰기 도전하는 윤미진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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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백번씩 화살을 꽂았던 과녁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윤미진. 김진호-김수녕의 대를 잇는 여자양궁의 간판스타 윤미진은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다. 권주훈기자
하루에도 수백번씩 화살을 꽂았던 과녁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윤미진. 김진호-김수녕의 대를 잇는 여자양궁의 간판스타 윤미진은 내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다. 권주훈기자
‘양궁여왕’ 윤미진(20·경희대)을 만난 17일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게다가 태릉선수촌엔 이날 새벽 눈까지 내렸다. 그래서일까. 선수촌 양궁장에 들어서자마자 한겨울 분위기가 완연했다. 바람까지 씽씽 불어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양궁선수들의 훈련은 겨울에도 계속된다. 가건물 안에 창문을 만들어놓고 그 창문 틈으로 밖을 향해 활을 쏜다.

난로 옆에서 활을 쏘던 윤미진은 사진촬영을 위해 밖으로 나가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으이구, 추워. 감기 걸리면 책임지세요.” 그는 “인터뷰 하는 게 그리 반갑지 않아요. 내 훈련시간을 빼앗기잖아요”라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취재해온 기자와는 친분이 많은 터. 그럼에도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윤미진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했다. 그가 남들 쉬는 주말이나 한밤중에 양궁장에 나가 혼자 훈련할 만큼 지독한 ‘연습벌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년은 아테네올림픽이 열리는 해. 윤미진은 올림픽 양궁 사상 초유의 기록에 도전한다. 바로 2연속 올림픽 2관왕. 세계최강인 한국 양궁이지만 아직 아무도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는 없다. ‘원조 양궁여왕’ 김진호(한국체대 교수)도, ‘신궁’ 김수녕(예천군청)도 2회 연속 올림픽에 나가 개인·단체 2관왕에 오르진 못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2관왕과 올해 뉴욕세계선수권대회 2관왕으로 세계최고의 여궁사로 군림하고 있는 윤미진은 내년 아테니올림픽에서도 당연히 금메달 1순위 후보. 그 또한 “선수생활에서 이룰 것은 거의 이룬 만큼 2관왕 2연패가 마지막 남은 목표”라고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부담을 갖거나 그러진 않아요. 평소에 ‘아, 난 할 수 있어. 된다’ 이런 마인드컨트롤을 하진 않아요. 매순간 앞에 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손에 목표했던 게 쥐어져 있죠. 내년 올림픽도 마찬가지입니다.”

2연속 올림픽 2관왕을 노리는 윤미진의 걸림돌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먼저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국내대표선발전을 통과해야 한다.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다음해에 국가대표에서 떨어졌어요. 방심한거죠. 너무 속 상하더라구요. 정신 차리고 운동 열심히 해서 2002년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그때 느꼈어요. 다 아는 얘기겠지만 게을리 하는 선수에겐 기회가 없다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윤미진을 ‘타고난 선수’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만들어진 선수’에 가깝다. 스스로도 “여기에 오기까지는 노력이 더 많이 작용했다”고 한다.

“타고난 부분은요. 음…. 별로 없는데…. 시력(1.5)이 좋고 활을 쏘기 위한 몸의 골격이 잘 잡혀있다는 정도? 하지만 키도 그렇게 크지 않고(1m67) 근력도 약해서 38파운드짜리(활의 강도, 세기를 말함) 활을 써요.”

서오석(46·전북도청) 여자대표팀 감독에게 “윤미진이 다른 선수와 차별화되는 장점이 뭐냐”고 물었다. 서 감독은 윤미진이 개인·단체 2관왕을 차지했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올해 뉴욕세계선수권대회의 사령탑.

그는 세 가지를 들었다. “우선 상황파악이 빠르다. 그때그때 위기를 잘 모면하고 상황대처능력이 뛰어난 게 강점이다. 둘째, 김수녕처럼 대담하고 독한 면이 있다. 승부욕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달리기를 해도 항상 악바리처럼 1등을 한다. 마지막으로, 동료 선후배와의 관계가 좋다. 어린 나이지만 베푸는 스타일이라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

활 잘 쏘고 성격도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얘기. 하지만 양궁선수로 100점에 가까운 윤미진도 ‘로보트’처럼 완벽하진 않다. 남들처럼 긴장하고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고 한다.

“사선에 섰을 때 가장 떨려요. 예전에 활을 놓쳐 0점을 쏜 적도 있어요. 아테네올림픽에선 양궁스타디움이 고대 올림픽 경기장이잖아요. 시선이 많이 쏠릴테고, 그래서 더 떨릴 것 같아요.”

윤미진은 스무살 여대생답게 노래방과 나이트클럽 가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해 터키에서 열린 유럽그랑프리대회가 끝난 뒤 나이트클럽에서 가진 뒤풀이 행사에선 밤새 외국 선수들과 춤추며 놀았다고. 대학생이 된 뒤 미팅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아직 남자에겐 관심이 없단다.

운동선수 생활을 마친 뒤엔 어떤 꿈을 갖고 있을까.

“오교문(전 남자국가대표) 선배로부터 ‘운동도 좋지만 공부를 해봤는데 전혀 새로운 세계더라. 알면 알수록 재미있으니까 너희들도 공부를 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대학원도 졸업하고 싶고, 아무튼 공부를 많이 하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오늘 시간 빼앗겼으니 나중에 훈련시간 보충해야겠다”고 말했다. 미소 띈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야무져 보일 수가 없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윤미진은 누구▼

△생년월일=1983년 4월30일

△신체조건=1m67, 56kg

△시력=좌우 1.5

△가족관계=윤창덕, 김정희씨 사이에 1남4녀중 막내

△출신학교=송정초등-수성여중-경기체고-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 2학년

△주요 우승 경력=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인·단체 2관왕, 2003뉴욕세계선수권대회 개인·단체 2관왕, 2003유럽그랑프리 개인·단체 2관왕

△수상 경력=2000년과 2003년 자황컵 여자대상, 2000대한민국 체육상, 2003윤곡상, 대통령훈장 청룡장

△활=윈&윈 38파운드

△취미=음악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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