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휴가 나눠 가기'

  • 입력 2003년 8월 11일 18시 34분


8일이 입추(立秋)였고 광복절인 15일은 말복(末伏)이다. 말복 다음 입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입추가 지난 뒤에 말복이 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이치다. 한두 차례 무더위가 더 남아있다는 예고인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휴가는 끝물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 도심의 차량 통행도 부쩍 늘었다. 다음주부터는 동해안에 몸을 담그기가 조심스러워질 테고,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결에도 어느새 가을 기운이 배어 있다.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은 “좋았다”기보다는 여전히 “시끄럽고, 더럽고, 무례했다”는 편이다. 월드컵 때 수백만명이 응원을 마친 후 휴지 한 점 없이 깨끗이 치워진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를 보고 한국민의 저력에 가슴 뿌듯해했던 이들도 여름 휴가지를 다녀와서는 “대한민국은 아직 멀었어”라고 자탄한다. 회 한 접시에 20만원을 주었다거나 하룻밤 30만원짜리 민박집에서 새우잠을 잤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좁은 나라에서 여름 한철 몰아서 휴가를 가는 패턴 때문이다.

▷휴가 집중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해마다 여름철이면 ‘휴가 몰아치기’가 여지없이 되풀이된다. 휴가를 나눠서 가는 데 대한 시스템적 접근이 없는 탓이다. 우선 하계 및 동계 휴가로 이원화돼 있는 현재의 휴가 제도를 연간 할당제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매년 초 자신이 휴가를 가고 싶은 달을 골라 선택적으로 휴가 기간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수욕철인 7∼8월이나 스키시즌인 12∼2월에 휴가를 가는 사람보다는 그 밖의 달에 휴가를 가는 사람에게 휴가비 지급을 늘리거나 기간을 연장해 주는 메리트시스템도 고려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중고교생에 대한 교육당국의 배려다. 미국에서는 학기 중 부모 동반 여행을 현장학습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고 있고 해당 휴가지에서 할 수 있는 과제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여행을 많이 해 본 이들 중에는 11월을 가장 이상적인 시기로 꼽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가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계절인 데다 어느 곳을 가든지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과일과 생선도 제 철이 있듯이 산과 들도 특별히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법정 스님은 11월의 강진 다산초당 주변 경치를 첫손으로 꼽은 적이 있고, 유홍준 교수는 그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11월 중순 경주에서 감은사로 넘어가는 감포가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바 있다. 내년에는 11월 휴가자가 부쩍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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