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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8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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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역사 왜곡, 식민지 청산, 친일파 논쟁 등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그 시대의 그림자는 아직도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듯하다. 더 불행한 것은 아직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냉정함을 유지하며 바라볼 수 있는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해 논란이 됐던 작가 복거일이 이 ‘친일’ 문제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그는 “버림받은 자들에 관해서 세상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들을 들려주는 것이 작가의 책무”라며 친일파라고 매도돼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를 하겠다고 했다.
그는 우선 일본의 조선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한다. “식민지 시기 조선인 인구는 1910년부터 1942년까지 94.4%가 늘었다”며 “식민 통치의 본질적 제약과 폐해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 통치 아래서 조선 사람들은 상당히 잘 살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친일파 청산 논란에 대해서 “조선총독부로부터 식민 통치 정책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렇게 무자비하고 철저했던 일본의 식민 통치는 조선에서 특히 무자비하고 철저했다”고 말한다. 결국 당시 조선인들은 대부분 ‘친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극악한 몇몇 외에는 덮어두자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부끄러운 과거가 짓누르는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려 애쓰는 저자의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민족이 과거의 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사명감’은 저자에게 또 다른 무게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일본에 협력하는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철저했는데도 일본 본토의 일본인보다도 한반도 조선인의 인구증가율이 높았으므로 조선인들은 일본 식민 통치하에서 잘 살았다는 모순에 대해 저자는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일본인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조선인 임금, 사회적 진출의 제한, 법 집행의 차별 등 저항을 정당화하는 식민지 현실에 눈감아버리는 것도 저자의 의도가 앞섰기 때문인 듯하다. 어떤 의미의 역사 청산이든 엄정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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