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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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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집단 아닌 안보기관 ▼
정보기관은 이처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막중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정보기관은 임무의 비밀성과 조직의 특수성을 기해야 하고, 무엇보다 구성원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국정원장 내정자가 ‘부적절’하다고 해서 난리다. 그것도 국회 정보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거부했으니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어도 문제는 간단치 않을 것 같다.
국가안보관(觀)이 가장 투철해야 할 자리에 사상이 걱정스러운 인물이 내정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의구심마저 부를 수 있는 일이다. 정보기관은 현실적으로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간주하고 음지에서 고도의 전략정보 및 첩보전을 수행하는 안보기관이지 결코 양지에서 공개적으로 화해 협력을 추구하는 정책부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국정원이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연루되는 등 자중지란에 빠진 것도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도 정책과학적 전문식견을 갖고 국가안보의 첨병으로서 고유기능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여당 의원의 지적처럼 자칫 국정원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라크전에서 보듯 지금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정예화, 첨단화로 분초를 다투며 정보경쟁력을 제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밖으로는 최대의 당사자인 우리를 배제한 채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 도박을 하고 있고, 안으로는 보혁(保革)간 이념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보기관은 국가위기 관리기관으로서 정부의 대내외정책 균형을 잡고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즉, 대통령과 이른바 ‘코드’를 맞춰 통치철학과 정치적 의지를 받드는 충성집단이 될 것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대한 특수활동이 생산한 특수지식을 바탕으로 최고 지도자를 필요에 따라서는 견제하고 교육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간 여러 차례의 국정원 쇄신 노력이 실패했던 것은 이 특수조직의 전문성을 무시한 정치적 인사개입과 전횡, 그리고 경직된 대북 유화정책 때문이었다. 즉, 정보기관을 지나치게 권력의 도구로 삼아온 데 문제가 있었다. 정보기관 개혁의 초점은 정치적으로 사람을 바꾸고 구조를 중립적으로 조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인물을 정책적으로 키우고 관리해 효율적인 정보활동을 하게끔 해 주는 데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조지 테닛 CIA국장을 유임시킨 것도 그 예다.
무릇 정보기관의 책임자는 오직 검증된 안보 전문가로서 행정가적인 능력과 학자적인 소양, 스파이적인 기질 모두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그 방대한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해 수준 높은 정책정보를 적시에 생산해 낼 수 있다. 그간 국정원 간부들이 각종 부패사건에 연루돼 내분이 생기고 국정원장이 햇볕정책 전도사 역할을 했던 것은 모두 이러한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소홀해진 대공임무 복원시켜야 ▼
누가 책임자가 되건 햇볕정책이 거의 와해시킨 국정원의 대공 임무와 기능을 하루빨리 복원시켜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대공 활동을 사실상 마비시킨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 대공 전선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 위협과 대남 공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가장 기본적인 국가보위 임무에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국정원을 철저히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국정원장 임명 문제는 그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전 안기부 안보통일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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