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19>식품-의료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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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는 식품안전관리 기구들을 일원화하여 더 효율적이며 일관된 식품안전관리 정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1998년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광우병 파동으로 국내에서도 광우병에 걸린 육류의 수입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동안 국민이 쇠고기 먹기를 꺼리는 현상까지 있었다. 그 후에도 다이옥신에 오염된 물고기, 중국산 수입꽃게의 납조각 검출사건, 유전자조작 식품의 위해 논쟁 등 식품안전 문제가 해마다 이슈화되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먹을거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 따라서 식탁의 안전성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가 됐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가의 식품관리 정책도 과거 식품의 양과 가격 등에만 관심을 갖던 생산자 중심의 정책에서 소비자 중심의 정책으로의 전환돼야 한다.

다이옥신, 유전자조작 식품 등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식품 위해 요소가 급증하면서 우리의 식품환경은 정부의 강력하고 효율적이며 일관된 식품안전 정책의 수립 및 수행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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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국가 식품안전관리 체계는 식품별 관리부처, 수입식품 검역부처, 근거법령 등이 모두 다원화돼 식품관리 정책의 신속성, 일관성,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또한 1995년 지방자치단체의 출범과 함께 많은 식품행정 업무가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이관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인력과 재정으로 인해 식품안전관리 업무의 비효율화와 비전문화가 야기되고 있다.

다원화된 식품안전관리 체계에서는 식품의 불안전성에 대해 신속히 대처하기 힘들고 부처간 떠넘기식의 책임회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정책의 수립과 수행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비효율성과 비일관성은 소비자들에게 식품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일관되고 통일성이 있는 식품안전관리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원화된 관리체계를 일원화하는 전면적 개편의 필요성이 있다.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소비자단체, 학계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영국 캐나다 덴마크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전통적으로 식품안전관리 다원화 체제를 고수하던 국가들도 최근에는 식품안전관리를 제고하기 위해 일원화된 체제로 바꾸고 있다.

식품안전관리 체계를 일원화하면 식품안전관리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 결정 및 법령 제정 권한이 통합돼 정책결정 기능이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관리 사각지대나 편향된 의사결정을 배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최종 의사결정이 명확히 이뤄지고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게 돼 책임 있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자유화와 시장개방의 흐름 속에서 각종 위해 요소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는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국가의 기본적인 소명이며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다. 새 정부는 행복한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식품의 안전성을 제고하기 위해 국가 식품안전관리 체계의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실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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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선▼

국가 식품안전관리체계의 개편 문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최근 몇 년간 광우병 파동, 유전자조작식품 등 식품 위해성 논란이 심화되면서 심각하게 제기돼 왔다.

영국의 경우 광우병 파동 이후 식품안전 문제가 국가의 중요 과제로 대두되자 식품안전관리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기존의 농림부(MAFF)에서 보건부 산하 식품규격청(FSA·Food Standards Agency)으로 이관하고 식품안전과 관련된 예산과 정책 및 법규제정 업무를 일원화시켰다. 아일랜드는 보건아동부 산하 식품안전청(FSAI·Food Safety Authority of Ireland)에서 식품안전관리 법규제정 및 정책수행을 맡고 있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및 타 부처의 집행업무도 감독하고 있다.

대표적인 축산업 국가인 덴마크는 식품관리정책 수립 및 법규제정 업무를 식품농업수산부 산하의 수의식품관리청(DVFA·Ministry of Food agriculture and Fishereis)으로 일원화했다. 캐나다의 경우 연방정부의 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해 식품안전 정책집행 업무를 식품품질관리 업무와 연계시켜 농업 농식품부 산하의 식품검사청(Canadian Food Insepection Agency)으로 일원화했다. 유럽연합(EU)도 2002년 초에 유럽연합 식품안전청(EFSA)을 출범시켰다.

미국의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식품의약국(FDA), 농림부(USDA) 산하 식품안전검역청 등 6개 연방부처의 12개 기관이 식품안전관리 업무에 관여하는 다원적 모델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빌 클린턴 정부 시절 국립과학원(NAS·National Academy of Science)에서 식품안전관리 정책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FDA 대신 통합된 새로운 단일 식품안전기구 설립을 권고했고, 소비자단체 및 미 의회 산하 감사원(GAO)도 단일 식품안전기구의 필요성에 동조한 바 있다. 이러한 논의는 농민단체와 식품생산자단체 등의 반대로 진전되지 않았으나 9·11테러를 계기로 백악관을 중심으로 단일기구의 필요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전현희 변호사/치과의사(대외법률사무소)

▼3월말 시행 '의료기관 평가' 이렇게▼

의료기관 평가. 언뜻 생소한 이 제도는 정부가 100병상 이상의 병원에 대해 정기적으로 의료의 질, 환자의 권리와 편익, 시설과 인력 수준 등을 평가하는 제도다. 대학 평가가 대학교육의 질을 여러 측면에서 평가하듯, 의료기관 평가는 병원의 의료서비스 질을 평가한다. 현재 이를 규정한 의료법 시행령이 입법예고 중이어서 예정대로라면 3월 말부터 이 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의 목적은 한마디로 의료기관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여 질 향상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상품들에 대한 평가와 달리 왜 정부가 앞장서서 의료기관을 평가하려 할까. 그것은 의료서비스가 일반 상품과는 달라서 소비자가 직접 질을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마치 변호사처럼 개인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이 제도가 제대로 운영된다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가 명확해야 한다. 흔히 소비자들은 의료의 겉모습이나 시설, 첨단기계 등에 관심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의료기관 평가의 주목적은 의료의 의학적인 수준이다. 즉, 외양이 번드르르한 것보다는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는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둘째, 누가 평가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의료는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만큼 의료전문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정부, 의료 소비자, 의료전문가가 모두 참여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평가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미리 정하는 것이 좋다. 또 평가결과를 어디까지 공표할 것인가 하는 것도 미리 결정해야 한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한다는 점에서는 모든 평가결과가 공표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외국에서 보는 것처럼 평가결과를 소비자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고, 특정 의료기관에 환자가 불필요하게 몰리는 것과 같은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결과의 공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부작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공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보건의료정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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