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술사의 역사´

  • 입력 2002년 12월 13일 17시 38분


◇미술사의 역사/우도 쿨터만 지음 김수현 옮김/687쪽 2만5000원 문예출판사

이 책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나 호르스트 잰슨의 ‘미술의 역사’와 같은 미술사 책이 아니다. 미술사의 역사라는 두겹의 역사를 통해 미술을 보는 시각의 변천을 보여준 ‘메타 미술사’다.

엘 그레코는 피카소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스페인 화가로 꼽히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를 미술사의 중심 인물로 등록시킨 사람은 독일 미술사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래페(1867∼1935)다. 엘 그레코는 인상파 화가 에두아르 마네보다 뒤늦게 명성을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스페인 미술사가 마누엘 코시오(1858∼1935)가 엘 그레코를 발견했다. 그가 처음 엘 그레코 작품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을 때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장인 데 마드라초는 엘 그레코의 작품을 우스꽝스러운 회화로 일축했지만 마이어 그래페는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잰슨은 ‘미술의 역사’에서 ‘엘 그레코의 명성이 오늘날처럼 높았던 적이 없었다’고 썼다. 엘 그레코는 표현주의를 통해 재발견됐고 표현주의 시대에 있어 미술을 보는 시각의 변천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고대와 르네상스를 미술의 모범으로 보는 ‘교과서’적 시각은 요아힘 빙켈만(1717∼1767), 야코프 부르크하르트(1818∼1897) 같은 위대한 미술사가를 통해 완성된 것이다. 빙켈만은 고대 미술의 특징을 그 유명한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성’으로 정의했고 부르크하르트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미술의 전개과정을 통일된 연관성 속에서 파악해 르네상스를 문화사의 한 새로운 시대로 제시했다.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은 스승 부르크하르트를 따르면서 르네상스를 테제로, 바로크를 안티테제로 제시했다.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 평면성과 깊이감, 폐쇄된 형태와 개방된 형태, 다원성과 통일성, 명료성과 불명료성 등은 그가 사용한 개념쌍이다.

바로크 양식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바로크의 재발견은 뵐플린과 동시대를 살았던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1850∼1938)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바흐의 음악이 잊혀졌다가 재발견된 것도 이 무렵이다. 바로크의 재발견이 없었다면 엘 그레코의 재발견도 힘들었을 것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위대한가, 하르멘스 반 라인 렘브란트가 위대한가. 미술 애호가들의 오랜 논쟁 중 하나다. 만화영화 ‘플랜더스의 개’에서는 루벤스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나온다. 위대한 미술사가 부르크하르트도 렘브란트보다 루벤스를 높이 평가했다. 미술사의 역사에 있어서 렘브란트 평가의 반전만큼 극적인 것은 없었다. 그때까지 17세기의 한 지방 화가쯤으로 간주되던 렘브란트는 갑자기 셰익스피어의 반열에 올랐다. 렘브란트의 재발견은 인상파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파리에서 활동한 독일 미술사가 에두아르트 콜로프는 “렘브란트에게 핵심적인 요소는 형태와 소묘가 아니라 색채와 빛”이라고 평가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품 ‘라오쿤 군상’에 대한 논쟁, 한스 홀바인의 ‘시장 마이어의 성모’ 진품 논쟁 등 미술사에 얽힌 에피소드와 유명한 빈 학파가 현대 미술사학에 미친 영향,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미술사 연구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과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원제 Geschichte der Kunstgeschichte(1996).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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