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7년 이어온 ‘주역’ 강의 마무리 大山 김석진옹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7시 50분


김석진 옹은 17년간 강의해 왔던 흥사단 강당을 떠나며, 대선정국과 관련해 “지금은 섣부른 ‘공약’보다는 이제까지 해 오던 일을 차분히 정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김형찬기자
김석진 옹은 17년간 강의해 왔던 흥사단 강당을 떠나며, 대선정국과 관련해 “지금은 섣부른 ‘공약’보다는 이제까지 해 오던 일을 차분히 정리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김형찬기자
“정치의 요체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먹는 것이요, 둘째는 재물이요, 셋째는 제사요, 넷째는 건설이요, 다섯째는 성품 교육이요, 여섯째는 형벌을 다스림이요, 일곱째는 손님 접대요, 여덟째는 군사이니라(八政, 一曰食, 二曰貨, 三曰祀, 四曰司空, 五曰司徒, 六曰司寇, 七曰賓, 八曰師). 정치란 첫째로 ‘모든 국민들에게 곡식을 나눠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백성들이 그 정부를 보호해 주게 되지요.…”

10일 오후 7시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7년 째 이곳에서 ‘주역’을 강의해 온 대산 김석진(大山 金碩鎭·74) 옹의 마지막 강의였다. 김 옹은 ‘주역’의 정신을 정리하기 위한 마지막 강의로 고대 중국의 문화를 정리한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택했다. 이 강의를 끝으로 김 옹의 대중강의는 막을 내리고 다음 주 화요일 이곳에서는 제14기의 수료식이 열린다.

강의가 끝난 후 흥사단 회의실에서 김 옹을 만났다.

-이제 후련하십니까? 아쉬움도 있으시겠지요.

“그 어렵다는 주역, 그 오랜 옛날의 이야기를 17년 동안이나 서울 한복판에서 강의했다는 것, 언제나 넓은 강당을 꽉꽉 메울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 그만큼 즐겁게 강의했다는 것. 이게 다 보람이지요. 이제 뒤를 이어줄 사람도 있으니 떠나야지요. 인천, 대전, 청주 등 다른 곳의 강의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어요. 서울에서 다음에 강의를 맡을 사람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주역’을 줄줄 외웠어요. 저 때문에 가려져 있었지요.”

-사람들이 그 옛날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양의 물질문명과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 덕에 살기는 좋아졌지만 마음은 불안하지요.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의지할 것이 필요하지요. 주역은 이런 시대에 더 필요해요. 사람도 육체만 비대하고 정신이 허약하면 정신병에 걸리지요. 사회도 마찬가지로 정신병적 사회가 될 수 있어요.”

-정신적 의지처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주역일까요?

“주역은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지요. 특히 주역은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에요. 하지만 단순히 길흉만 판단하는 점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길을 제시하며 나아갈 방향도 제시해 주기 때문에 주역을 공부하면 정신적 심리적으로 자신감이 생기지요.”

-강의를 들어보니까 ‘홍범구주’도 결국 정치 이야기더군요.

“정치란 것이 별 게 아니에요. 먹고사는 이야기지요. 정치판에서는 맨날 싸워도 경제가 잘 되면 정부가 국민의 신임을 얻게 되지요. 하지만 제발 신물나는 정쟁은 좀 자제해 줬으면 해요. 국민이 불안해하잖아요. 물론 내년에도 시끄러울 거예요. 지금 대립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대선을 맞아 되지도 않을 공약들을 떠벌이고 있는데 이제는 과거부터 내려 온 일을 먼저 정리해야 할 때예요. 주역은 변화의 학문이기는 하지만 ‘시의적절’한 변화를 이야기하지요.”

-이번 대선에 대해서도 말씀 좀 해 주시겠습니까?

“지난 입춘에 한 해의 괘를 뽑아 보면서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의 괘도 뽑아 봤어요. 둘 다 대단히 좋은 괘가 나왔는데 정말 막상막하더군요. 한 때 이 후보가 혼자 앞서 나가길래 괘를 잘못 뽑았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접전이 되더군요. 주역은 정말 신기해요. 하지만 주역에 입문한 후 약 50년 간이나 거의 매일 주역 점을 쳐 봤어도 이렇게 판단 내리기 힘든 경우는 처음이에요. 이 정도만 해 두지요. 괘는 매일 뽑지만 그냥 가까운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해요.”

-남북통일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통일이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이유는 남한에서 지역주의와 파당으로 분열돼 있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게다가 남과 북은 이념까지 다르니 그만큼 어렵지요. 그렇지만 남과 북은 지금처럼 여러 가지로 실갱이하다가 폭발적으로 통일의 기운이 일어나면서 하나가 될 거예요. 통일이 되기는 되겠지만 적어도 10년은 걸릴거예요. 그 무렵이면 이제 통일이 되는 단계에 와 있구나 하는 것을 다들 느끼게 될 거예요. 지난 달에 저도 금강산에 다녀오면서 정말 통일이 됐으면 하고 기원했어요.”

김 옹은 이제 대중강의를 접고 집필에 몰두할 계획이다. 다만 지난 9월 춘천에서 그 지역 사람들의 간청으로 어쩔 수 없이 개설한 강의가 있을 뿐이다. 내년에는 ‘도덕경’과 ‘중용’ 강의했던 것을 정리해서 책으로 내고, 점서(占書)도 낼 계획이다. “일반 사람들이 스스로 점을 쳐 보면서 미래를 준비하며 삶의 길잡이로 삼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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