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의원 도청-입수경위 논란

  • 입력 2002년 10월 23일 23시 46분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22일 국회 정무위에서 국가정보원의 도청자료라며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과 이귀남(李貴男)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의 통화내용을 폭로하면서 도청 문제와 이 자료의 입수 경위 등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정 의원은 23일 자신의 국회 발언과 관련, “국정원이 이 위원장과 이 대검기획관의 통화를 도청한 바로 다음날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관련 사실을 제보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국정원은 여당을 비롯해 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도청을 하고 있다”며 “도청 내용은 국정원장을 포함해 핵심 인사들에게만 전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9월 24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로비 의혹이 담긴 국정원 도청자료를 폭로한 적이 있어 상당수의 도청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입수 경로에 대해 그는 “국정원 내에 양심적인 제보자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전직 국정원 간부들의 물밑 제보도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국내 도·감청 대상은 대략 3만명 정도”라며 “국정원의 도청자료는 직접 프린트할 수 없도록 돼 있어 대부분 손으로 옮겨 적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으로부터 4억달러 대북지원설을 축소수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이 대검기획관은 “그런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이날 해명자료를 내고 “일자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월 초 중순경 이 위원장과 통화한 사실이 있다”며 “이 위원장이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의 명예훼손 고소) 사건 처리절차를 문의해 통상적인 절차를 설명해준 적은 있으나 사건축소 요구를 받은 사실은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날 정 의원의 주장에 공식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았지만 검찰 간부가 ‘검찰게이트’에 이어 또다시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검찰 간부의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에 오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건 축소 요청설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이 위원장이 실제로 계좌 추적을 하지 말라고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지만, 대부분의 검찰 간부들은 정 의원이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과장해서 전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오히려 검찰과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에 대한 불법 도청 문제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대검은 이날 자체적으로 두 사람의 전화가 도청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금감원 중 어느 쪽이 도청을 당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가안보 위해사범에 대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극히 한정적으로 감청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다”며 “일부 정치인의 주장대로 국가기관에 불법 도청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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