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대정부질문]“양아치” “그만해 ××” 난장판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9시 07분


1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 실시됐지만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 의석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 - 박경모기자
1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 실시됐지만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아 의석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 - 박경모기자
“야이, 양아치야 내려와.”

“완전히 환장했구먼. 거짓말 하려니 숨차지.”

10일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은 질문자로 등단한 의원 10명이 질문하는 동안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야유와 고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소한의 정치적 금도(襟度)나 상대의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첫 질문자로 나선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의원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상 로비의혹을 거론하자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박양수(朴洋洙) 의원이 “거짓말 하지 마” “뭐가 뒷거래야”라고 고함을 쳤다.

이어 등단한 민주당 신기남(辛基南) 의원이 ‘세풍(稅風)’ 사건을 거론하자 이번에는 한나라당 김학송(金鶴松) 이원창(李元昌) 의원이 “이게 무슨 대정부질문이냐” “앵무새다, 앵무새”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민주당 전갑길(全甲吉) 의원의 질문 때는 “미친 × 아냐” “그만 좀 해라, ××”란 욕설까지 난무했다.

상대당 후보나 현 정권의 핵심인물에 대한 기본적인 존칭도 생략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김대중씨’로,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은 ‘박지원이’로 불렀다.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후보나 한인옥(韓仁玉) 여사도 모두 ‘이회창씨’ ‘한인옥씨’로 불렀다.

양당 의원들의 발언내용도 시종일관 폭로와 비난으로 채워졌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이 질문 서두에 정치개혁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일부 피력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책에 대한 질문은 전무했다. 또 원고를 사전 제출하지 않은 채 단상에서 기습적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저격수’로 나선 이재오 의원은 아예 원고 없이 등단했고, 전갑길 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담은 원고를 사전에 배포하지 않았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퇴장하던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다”며 “가족회의를 열어 정치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치권이 이처럼 폭로전과 흠집내기로 흐르고 있는 것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기선을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세 후보 중 어느 누구도 당선 안정권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인 만큼 ‘터뜨리고 보자’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정글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과거처럼 돈과 조직을 통한 선거운동이 어려워지면서 ‘말의 폭력’과 ‘언어의 유희’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자가진단이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면책특권’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상대방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조차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대한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면책특권 제한은 헌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단시일 내 상황을 바꾸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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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같은 무책임한 폭로전과 극한 투쟁은 점점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켜 결국 정치권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의원들은 잊고 있는 듯하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이지현(李知炫) 간사는 “대선 때문에 정기국회 회기마저 한 달가량 줄였기 때문에 부실국회를 우려했는데 결국 국정감사에 이어 대정부질문마저 대선운동장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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