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강창희/자산운용업 진입규제 완화해야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55분


증권투자신탁업법, 증권투자회사법, 신탁업법, 보험업법, 증권거래법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 자산운용관련법을 하나로 묶는 자산운용업법 제정을 앞두고 열린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공청회에 나온 토론자들은 관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열심이고 정작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 운용회사가 많이 나오도록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논의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자산운용업도 3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공을 이룩한 운용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소유와 지배구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성공한 운용사의 소유와 지배구조를 보면 오너회사이거나 파트너십 형태의 회사, 또는 도제(徒弟) 형태의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운용업은 제조업 또는 다른 금융업과는 달리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하고 운용철학과 운용의 노하우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수되어 가는 업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세계 규모로 대형화된 운용사들을 지금도 규모나 조직면에서 오너회사나 파트너십 회사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들 회사도 모두 오너회사 또는 파트너십 형태로 출발했다. 지금도 규모는 대기업이지만 운용철학이나 노하우의 축적 및 전수과정을 보면 이상의 세 가지 형태 중 어느 한 가지 유형에 속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투신운용사는 설립 자본금요건을 100억원 이상으로 해 진입장벽이 높아 대부분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이거나 금융기관의 자회사이다. 그것도 모회사의 필요에 의해 설립된 경우가 많다. 필요한 인원은 모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던 사람이 옮겨오거나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사람으로 구색만 갖추어서 설립하다 보니 운용사에게 가장 필요한 ‘운용철학’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

‘운용업’을 자본금과 사무실 그리고 사람만 모아 놓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업(業)’으로 착각하고 있다. 운용회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운용철학’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운용시스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나라 운용회사는 조직에 뿌리내린 ‘운용철학’과 ‘운용성적에 대한 장기간의 기록’이 없다. 그러다 보니 영업은 과대광고와 스타 매니저를 앞세운 마케팅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모회사의 필요에 의해 수시로 경영자와 펀드매니저가 바뀐다. 경영자가 바뀌면 과거를 무시하고 다시 판을 짜서 시작한다. 이런 운용회사에 일관성 있는 ‘운용철학’과 ‘운용시스템’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규제라면 한국 못지않은 일본은 투신운용사의 자본금 요건을 1억엔(약 10억원)으로 낮췄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입장벽을 낮춘 만큼 사후관리는 이전보다 철저하게 하고 있다. 진입장벽을 낮추면 운용회사가 난립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80개 이상이나 되던 투신운용사가 현재는 70여개사로 줄어들고 있다.

자산운용의 노하우와 자산운용업에 비전을 가진 전문가 집단이 쉽게 운용업에 진출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진입규제를 완화시키는 내용이 자산운용법에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강창희 굿모닝투자신탁운용 사장 chkang@goodmanag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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