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피해]수해농지 병충해 급속확산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49분


전국 곳곳에서 수해 복구작업이 한창이지만 벼가 침수되거나 쓰러진 농촌에서는 복구 인력이 크게 모자라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더구나 남부지방에서 벼에 치명적인 ‘백수(白穗)·흑수(黑穗) 현상’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수확량 감소가 불가피해 추수를 앞둔 농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다.

농경지 피해가 심각한 전남지역은 1일부터 5일까지 공무원 군인 경찰관 등 5만9000여명이 복구작업에 나섰으나 벼가 완전히 쓰러진 5832㏊ 중 62%인 3611㏊만 복구했다. 벼가 절반 쯤 쓰러진 9868㏊는 인력 부족으로 쓰러져 있는 채로 벼를 수확해야 할 형편이다.

농경지 1800㏊가 피해를 본 나주의 경우 농민들이 시청 일손돕기 창구에 하루 평균 10여건씩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복구 인력 투입은 6, 7건에 그치고 있다.

나주시 농산과 관계자는 “매일 공무원 군인 등 300∼400여명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으나 피해 농가가 많은 데다 면적도 넓어 지원 요청에 일일이 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주시 남평읍 안기철(安基哲·37)씨는 “2500평의 논에서 재배한 벼가 쓰러져 시청에 두 차례 지원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며 “쓰러진 벼를 그냥 둘 수 없어 손해를 감수하고 1600평의 벼를 수확했다”고 말했다.

농경지 5만8778㏊ 가운데 지난달 홍수와 이번 태풍으로 3792㏊의 논이 피해를 본 충북지역 농촌에도 복구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영동군의 경우 논 1080㏊가 피해를 봤지만 복구 지원 인력이 침수주택 청소나 쓰레기 수거, 도로 보수 등에 대부분 투입돼 농경지 복구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영동군 용산면에서 2500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인환(金仁煥·66)씨는 “수확을 앞둔 벼가 모두 쓰러졌지만 도와 줄 사람들이 없어 한 포기도 세우지 못했다”며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협대출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손 부족 외에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벼이삭이 수분 증발로 쭉정이만 남는 백수와 검게 변하는 흑수 증세가 급속히 퍼져 농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5일 전남도에 따르면 태풍에 실려온 해풍의 영향으로 도내 전체 벼 재배면적 21만3000㏊ 가운데 16.4%인 3만4921㏊에서 백수 및 흑수 증세가 발생했다.

이 현상은 신안 진도 등 서남해안에서 내륙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태풍이 지나간 뒤 1주일 뒤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풍년농사를 가로막는 최대 복병이 될 전망이다.

전남 고흥군 포두면 해창간척지 3만5000평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박노영(朴魯永·38)씨는 “간척지 논이 모두 침수됐다가 4일 오후에야 물이 빠졌다”며 “30%의 벼에서 백수현상이 나타났고, 일부는 도열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지역에서도 호우와 태풍으로 일사량이 줄면서 이삭도열병과 벼알마름병, 잎집무늬마름병 등이 크게 번져 병충해 방제에 비상이 걸렸다.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영동〓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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