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포터블 비타민족, 머리속엔 ´건강…´ 가방속엔 ´비타민…´

  • 입력 2002년 8월 29일 14시 29분



‘포터블 비타민족(族)’이 등장하고 있다. 비타민을 비롯해 각종 건강식품을 휴대하고 다니는 20, 30대 전문직 직장인들을 주로 지칭한다. 이들의 손가방을 열어보자. 종합비타민, 다이어트용 생식, 칼슘제, 스위트너(설탕 대신 단맛을 내는 대체재) 등이 화장품을 넣어두는 작은 손가방, 휴대전화기, PDA, 만년필 사이로 쏟아져 나온다.

미국에서는 들고 다니며 마실 수 있는 ‘비타민물’도 인기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글라소사의 ‘비타민물’처럼 비타민 미네랄 허브 등이 함유된 ‘강화된 물’이 많이 팔리고 있어, 펩시나 스내플 등 음료회사들이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 ˝목표는 무병장수 아닌 ‘계속 젊은’ 상태˝
- ˝비타민 지나치면 害…˝

비타민, 생식(生食), 피트니스센터…. 한국의 젊은 ‘포터블 비타민족’은 돈만 빨리 벌어 놓는 것이 아니라 건강도 미리미리 챙겨놓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휴대 쉐이크통에 담아 즉석제조

서울 리츠칼튼호텔 심희보 판촉지배인(29)은 비타민을 ‘즐기면서 먹는’ 경지에 이르렀다. 외근이 많아 식사시간이 불규칙한 이씨는 차 안에 비타민통과 물통, 휴대용 생식 쉐이크통 등을 들고 다니며 필요할 때 ‘제조’해 먹는다. 4년 전 스위스항공 승무원이었던 심씨는 해외로 다닐 때 시차적응을 하며 피로가 누적됐던 것을 풀기 위해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다. 외국인 승무원들이 ‘껌을 씹듯’ 가벼운 마음으로 비타민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취미를 붙였다. 심씨는 이 때 동료들에게 배운 방식대로 사과주스와 탄산수를 섞은 뒤 비타민을 넣어 녹인 다음 먹는다. 심씨는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이때 과일맛이 나는 ‘사탕형 비타민’을 구입해 와서 종종 삼켜먹는 대신 빨아먹기도 한다.

●건강한 아기 생산을 위해 한알씩

연구원인 서흥규씨(31·LG전자기술연구원 대리)는 건강한 몸상태로 2세를 갖기 위해 비타민을 먹고 있다. 서씨는 체내에 축적된 니코틴이 2세에 좋지 않다는 설명에 올해 초 12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다. 또 니코틴이 비타민 C를 파괴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타민 보충’을 시작했다. 이씨는 하루종일 컴퓨터 화면을 보며 중장기 기술개발 기획을 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선진전자업체들의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눈이 충혈될 때가 많고, 식후에는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졌죠.” 이씨는 ‘멀티비타민’통을 책상에 넣고 점심식사 후에 한 알씩 먹는다. 비올리스트인 부인 최예선씨(30·서울바로크합주단)가 독일 이탈리아 등지로 장기공연을 떠날 때도 이씨는 아내의 여행가방에 비타민과 생식을 꼭 챙겨준다.

●보약같은 비타민

ING생명 마케팅부 정재원 부장(34)은 10여년째 비타민을 먹고 있어, 이제는 하루라도 안 먹으면 허전한 수준이다. 정 부장은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밥은 잘 못 챙겨 먹으면서 커피를 많이 먹는 버릇이 생겼다. 영양불균형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탄수화물과 조미료가 많은 음식은 자주 먹지만 다른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정 부장의 가방과 책상에는 비타민이 빠지지 않는다.

“야근하는 날이 꽤 있거든요. 식사도 거르고 신경도 많이 쓰니까…, 신진대사를 위한 ‘몸 보신용’이라 생각하고 먹어요.”

정 부장은 아침식사로 식초에 절인 ‘초콩’과 우유를 먹고, 오후에는 뼈에 좋다는 ‘홍화씨’도 먹는다.

●체력은 실력… 버티기위해 먹는다

프리랜서 동시통역사 이주연씨(28)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4시간짜리 ‘마라톤 통역’은 꿈도 못 꾼다”며 체력증진을 위해 종합비타민을 먹는 경우다. 금융이나 IT업계의 CEO를 수반하거나 식사시간과 겹치는 만찬 통역을 많이 하는 이씨는 자연히 식사가 불규칙할 수밖에 없다. 이씨는 “귀찮아서 그런지 작정하고 과일 먹는 시간이 별로 없다. 김밥이나 샌드위치는 아무리 먹어도 비타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별도의 비타민을 먹는다”고 말했다. 올해 초 아이를 낳은 이씨는 체내 칼슘도 부족해진 듯 싶어 칼슘제도 이따금씩 먹는다. 아침식사로 우유에 꿀을 탄 생식을 먹고 있다는 이씨는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 골다공증으로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미리미리 건강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