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증시독립' 지금이 때다

  • 입력 2002년 8월 11일 17시 57분


고양이에게 잡혀먹힐까봐 걱정스러운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도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지 않아 쥐들은 여전히 공포에 떨며 지낸다. ‘고양이 방울’ 우화다.

외국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한국증시도 이와 비슷하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한국 주식의 35%나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이 8월(1∼9일)에만 7785억원어치를 내다 파는 등 2월부터 7개월 동안 4조9225억원어치를 순매도해 종합주가지수가 700선 밑으로 추락했다. 현재 주가는 기업가치보다 저평가돼 있어 주식을 사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실제로 주식을 사는 개인이나 기관은 없다. 떨어지는 칼날(외국인 매도)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방울 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기관이 주가하락 위험(리스크)을 피하려고 주식을 사기보다 팔려고 하면 증시 전체의 주가하락 리스크가 더 커지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와 ‘시장의 실패’가 나타난다. 이때에는 부분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6%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고 기업이익이 사상 최대를 나타내는데도 종합주가지수가 700선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다. 증시가 틀렸거나 실물경제가 틀린 것이다. 주가하락의 주원인이 외국인 매도라는 점을 보면 증시가 틀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 잘못을 고치는 것은 정부와 기관의 책임이다. 정부는 연기금 생명보험 은행 투자신탁 등 기관들이 주식을 살 수 있도록 하루빨리 관련규정을 정비하고 기관은 남보다 앞서 매수에 나서는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감한 쥐가 많아야 안심하고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연기금 등이 주식을 사기 시작하고 갈 곳을 몰라 떠도는 단기부동자금 300조원의 10%만 증시에 유입돼도 주가는 급등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외국인이 삼성전자 포항제철 SK텔레콤 국민은행 현대자동차 등 한국의 대표기업 주식을 팔고 있는 요즘이 외제(外製)증시에서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외국인이 이런 주식을 파는 것은 한국경제와 개별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회계분식 달러약세 더블딥(경기가 짧은 회복 뒤에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 등 미국 요인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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