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세상읽기]「5共」이 돌아온다

  • 입력 1999년 3월 16일 20시 42분


‘오공이 돌아온다’는 소문에 정가가 술렁이고 있다. 원숭이 손오공이 아니라 ‘전두환의 분신’이라는 장세동(張世東) 전안기부장과 ‘허(許)씨 트리오’를 비롯한 5공(共)의 주역들이 서울 송파갑 재선거와 16대 국회의원 총선 등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한나라당은 ‘TK 텃밭’을 잠식당하지 않을까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국민회의는 은근히 반기면서 표정관리를 하는 중이고 자민련은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영입에 나설 태세다.

총선을 1년 앞둔 여야정당이 나름의 손익계산에 따라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득표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정치의 속성상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5공인사’들이 현행법상 피선거권의 제약을 받을 이유가 없는 만큼 선거에 출마하는 것 자체를 가지고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이 정치권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된 경위와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엄성에 대한 여야정당의 무감각한 태도다.

전두환씨의 정치적 복권을 위해 ‘대타’로 나설 장세동씨와 허화평 허삼수씨는 ‘반란과 내란 중요임무 종사’ 죄목으로 징역 3년 6월에서 8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았던 ‘헌정파괴 전과자’들이다.

정호용씨는 ‘내란목적 살인과 뇌물 방조’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고 전경환씨는 업무상 횡령 등 모두 여덟가지 죄목으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이 사람들은 ‘반성문’도 ‘준법서약서’도 없이 사면 복권의 혜택을 받았다. 이른바 ‘TK 지역정서’를 달래기 위한 사면권의 정치적 오남용(誤濫用) 때문이다.

61년과 80년 두 차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한 세력은 극소수 정치군인들이었다. 실질적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이들 세력에 붙어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들은 잠깐의 징역살이와 공민권 제한이라는 통과의례만 거친 다음 그 동안 권력을 악용하여 모은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산다.

좀 냉소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5공 인사들의 국회의원 출마는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치적 현주소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필수조건으로 요구한다. 따라서 그들이 그 무슨 이념을 내세우든 총칼이 아닌 말과 논리의 힘에 의지하겠다면 그럴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마땅하다.

모든 나라의 국민은 자기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한다. 만약 유권자들이 한 마디의 진실한 사죄도 없이 정치의 문을 두드리는 이 헌정파괴 전과자들을 국회로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 국민의 정치적 수준이 거기 머물러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또 군사독재를 무너뜨리는 일에 자기 인생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이라도 희생했거나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여야정당의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돌아온 5공’을 맞이하는 당신들의 정치적 손익계산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보이지 않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유시민〈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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