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졸속…파행…농담…

  • 입력 2002년 7월 24일 18시 59분


“양당 간사간 합의에 따라 정부 답변은 서면으로 대체하겠습니다.”

23일 한나라당과 민주당간의 ‘말꼬리잡기’ 공방으로 11시간 이상 공전하다 밤늦게 속개된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은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의 산회 선포로 불과 2시간 만에 초스피드로 끝났다.

156조원의 공적자금 처리문제 등 예전 같으면 하루 종일 토론해도 시간이 모자랄 사안들이 시간 부족을 이유로 일사천리로 무사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본회의장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장관들의 답변서를 준비하던 공무원들의 입에서는 “이렇게 졸속으로 끝낼 것을 왜 밤늦게까지 파행을 빚었느냐”며 볼멘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중요한 국정 현안을 내팽개치듯 졸속처리한 회의 진행도 문제지만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경위는 더더욱 한심했다.

이날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의 “민주당은 빨치산 집단같다”는 발언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 의원총회를 소집해 이 총무의 의원직 사퇴 등을 요구하며 국회를 보이콧했다.

이 총무의 발언이 도가 지나친 실언(失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회 발언도 아닌 당내회의에서의 발언을 빌미로 국회를 등진 민주당의 처사는 ‘권력비리 공세로 몰리던 차에 잘 걸렸다’는 식의 행태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국회 파행의 원인 제공자인 이 총무와 한나라당의 행태도 비난받아 마땅했다. 이 총무는 ‘빨치산 발언’ 직후 의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내 발음이 안 좋은 것을 트집잡는다”고 둘러대기만 했고 일부 의원들은 “그런 식이라면 대변인도 남경필이 아니라 ‘남경칠’이란 말이냐”며 농담으로 일관했다. 국회 정상화의 진지한 의지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양당은 24일에도 민주당이 작성했다는 정국 관련 문건을 꼬투리삼아 공방을 주고받다가 대정부질문을 2시간 넘게 중단하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민의(民意)와는 따로 노는 ‘내멋대로 국회’의 이런 풍경은 언제쯤 사라질까.

윤종구기자 정치부 jkma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