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월드컵]외국인이 본 월드컵 에너지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31분


“3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우리 직원들과 한국 국민이 이렇게 행복하고 자신감 넘쳐 보인 적이 없었어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의 식음료 담당부장인 제랄드 무트(48·사진)의 얘기다. 가족과 한국음식을 즐기며 주말이면 설악산을 자주 찾는다는 무트씨는 미국과 유럽 유명 호텔의 식음료 분야에서 23년 동안 일한 베테랑 호텔리어.

프랑스인인 무트씨에게 용광로 같은 열정과 자기 표현,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었다. 이번 월드컵 이전까지 무트씨가 보아온 한국인은 감정 표현도 잘 할 줄 모르는 무뚝뚝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들의 변화를 발견했다.

“여태껏 한국인들은 감정 표현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한국에 와서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의중을 알기 위해 몇 번이고 질문을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도 솔직하고 순수하게 감정을 표현할 줄 알다니…. ‘배신감’마저 느낍니다(웃음).”

호텔 직원들도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자신감에 충만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었던 다음날 미팅에서 말 없이 항상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한 지배인이 ‘새 사람’이 돼 나타났어요. 그는 미팅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의견을 말해 ‘웬일이냐’고 묻자 ‘요즘 같으면 세상에 어떤 일이 닥쳐도 웃으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나도 그랬지요. ‘요즘 같은 미팅 분위기라면 우리 호텔도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실 무트씨는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응원단이 난동을 부려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다. 한국전이 있을 때마다 6만여명의 응원단이 거리응원을 펼치는 코엑스 광장이 호텔 바로 뒤편에 있기 때문.

그러나 미팅 때마다 난동에 대한 걱정은 전혀 안하고 한국전 응원 얘기를 하며 밝게 웃는 직원들을 보고 무트씨는 놀랐다. 이러한 자신감과 단결력이라면 한국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무트씨는 “이제는 길거리나 쇼핑가를 가면 외국인인 나를 보고 먼저 인사를 건네는 한국인이 늘었다”며 “이 같은 자신감을 가진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될 한국의 미래는 밝고 역동적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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