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심판과의 동침

  • 입력 2002년 6월 9일 22시 40분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만났다. 포클랜드전쟁이 끝나고 겨우 4년 만이었으니 그 열기가 짐작이 간다. 후반 6분 아르헨티나 ‘축구신동’ 마라도나와 잉글랜드 골키퍼 실턴이 함께 뛰어올랐다. 실턴은 1m90의 꺽다리인 반면 마라도나는 겨우 1m65, 당연히 실턴 손에 잡혀야 할 볼은 그러나 잉글랜드 골문을 갈랐다. 뒤늦게 마라도나가 머리 대신 손으로 집어넣은 것으로 확인된 이 골은 월드컵 70년사에서 대표적 오심사례로 인용된다. 바로 ‘신의 손’ 파동이다.

▷심판처럼 외로운 직업이 또 있을까. 심판의 실수가 곧 승패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선수나 관중은 그들에게 인간의 능력을 넘는 완벽성을 요구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조지 커닝 심판담당 매니저는 “심판도 사람인 이상 실수는 있게 마련이고 실수가 없으면 축구도 없다”며 심판 편을 들지만 오심으로 진 팀 입장에서는 땅을 칠 노릇이다. 세계에서 난다, 긴다하는 엘리트 심판 72명이 진행하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미국에 진 포르투갈을 비롯해 벌써 여러 나라 팀이 오심을 탓하고 있다. 오심이 실수 때문이라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문제는 의도적인 오심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도중 현지에서 감독직을 박탈당한 뒤 차범근씨는 폭탄선언을 했다. FIFA 회장선거로 우리나라에 미운털이 박히는 바람에 판정에서 불이익을 봤다는 내용이다. 당사자들이야 극구 부인하지만 스포츠에서 담합이나 심판 매수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체조나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특히 심하다. 인기절정을 치닫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프로레슬링에서 보듯이 승부조작이 탄로 나면 순식간에 팬이 떠나버린다. 그러기에 국제경기에선 심판진과 선수단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예 숙소를 떼어놓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다.

▷FIFA가 한국과의 일전을 앞둔 미국팀을 심판진과 같은 호텔에 투숙하도록 한 것은 충분히 의혹을 살 만하다. “미인대회 참가자와 심사위원이 한 호텔에 묵는 것”이라는 한국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비유대로다. FIFA는 앞서 이 호텔이 본부숙소라는 이유로 한국팀에 숙박을 퇴짜 놓았다고 하니 세계 축구를 주무른다는 FIFA의 일 처리치고는 한심하다. FIFA에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국-미국전이 어디 보통 경기인가.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라’는 우리 속담이라도 들려줘야 할까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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