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제]투자자 오도 메릴린치, 1억달러 벌금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09분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자사의 이해에 따라 주식을 잘못 추천, 투자자를 오도한 경우 천문학적인 ‘벌금’을 납부해야 하는 선례가 생겼다. 미 최대의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는 1억달러를 내고 투자자 오도 사건을 매듭지었다고 21일 발표했다. 메릴린치의 애널리스트들은 메릴린치가 신주인수 계약을 수주할 수 있도록 사내에서는 ‘쓰레기’로 평가했던 인수대상 기업의 주식을 대외적으로는 매입대상으로 권유한 혐의를 받아왔다.

메릴린치는 이 사건을 수사해 온 뉴욕주에 4800만달러, 뉴욕 이외의 다른 주(州)들에 5200만달러 등 총 1억달러를 지급하는 한편 뉴욕주는 수사를 일단락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애널리스트의 주식 추천과 관련, 벌금 성격의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한 것은 메릴린치가 처음이다. 이번 합의에 따라 투자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메릴린치가 21일 뉴욕주 검찰과 합의한 내용은 앞으로 다른 대형증권사들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엘리어트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은 이날 “메릴린치의 합의문은 본보기일 뿐”이라며 “투자자보다는 자신들의 영업을 우선시해 온 대형증권사들 모두가 합의한 내용대로 서둘러 관행을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스테판 커틀러 검사국장도 “이 합의가 종점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뉴욕주 검찰은 메릴린치 외에 다른 증권사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 월스리트저널은 메릴린치의 헨리 블로짓 못지 않게 90년대 말 기술주 띄우기에 앞장서 온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잭 그루브먼, ‘넷(net)의 여왕’으로 불렸던 모건스탠리의 메리 미커 등을 다음 수사대상으로 꼽았다.

메릴린치도 형사사건만 마무리지었을 뿐이다. 이번 사건으로 주가가 20%나 폭락, 90억달러의 시장가치를 날려버렸다. 여기에 거액의 민사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메릴린치는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가 회사의 신주 인수업무를 도와주지 못하도록 담을 쌓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영업부문과 조사부문이 얼마나 연계돼 있는지를 모니터하는 사외감시역을 임명하고 그동안 영업유치에 따른 성과급 성격이 강했던 애널리스트의 연봉을 주식 추천의 정확성에 따라 지급하고 그 명세도 공개하겠다는 것.

이 같은 조치는 애널리스트들이 회사와 관련있는 기업들의 주식을 우호적으로 추천해 온 관행을 바꾸는 데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대형증권사인 골드먼삭스도 재빠르게 이날 연구부문의 동향을 감시하는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고 제럴드 코리건 전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첫 옴부즈맨에 임명했다고 발표, 구조개혁이 월가로 확산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당초 연구부문을 독립된 회사로 분리하거나 회사와 관련있는 기업에 대한 주식의 ‘사자’ 추천을 금지하는 등의 검찰 측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합의가 근본적인 개혁의 계기가 되기에는 미흡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I think…▼

이번 메릴린치 애널리스트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증권회사와 애널리스트의 모럴해저드는 대단히 심각하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증권회사를 위해서 쓰레기 같은 주식을 매수 추천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가 하면, 신주 공모나 기업가치 평가에서도 실제와는 달리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일을 자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그로 인한 손해는 분석가들의 추천만을 믿고 투자한 순진한 투자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세계적 명성의 메릴린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다른 투자회사라고 다를까? 우리나라 증권사의 경우에도 자사 애널리스트들이 강력 매수 추천한 종목을 자기들은 뒤에서 매도하는 부도덕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매도 추천시 뒤따를 수 있는 해당 기업으로부터의 항의와 관계 악화 등을 염려하여 매도 추천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메릴린치 사건을 계기로 월가에서는 애널리스트의 부도덕한 행위를 근절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해상충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하나둘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움직임은 월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전파될 것이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오세경 건국대 교수·회계학과

역대 벌과금 상위 10위 금융사 (단위:100만달러)
연도회사금액
1988드렉셀 번햄 램버트660
2001리퍼블릭 뉴욕 시큐리티스569
1993프루덴셜 시큐리티스371
1996파인웨버298
1992샐로먼 브라더스290
2002메릴 린치100
2001-2002크레디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100
1996나스닥 스톡 마케트2100
2000샐로먼 스미스 바니45
1999베어 스턴스39
자료:월스트리트저널(5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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