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홍길동이 조선 연산군 때의 실존 인물로 권력층의 특혜를 누렸고, 이 때문에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세대 설성경 교수(국문학과·58·사진)는 30일 출간하는 저서 ‘홍길동의 삶과 홍길동전’(연세대출판부)에서 조선왕조실록과 남양 홍씨, 영월 엄씨 등 족보를 토대로 이같이 주장했다.
설 교수에 따르면, 홍길동의 이복형인 홍일동은 연산군과 중종의 외조부뻘이다. 홍일동의 딸 숙용 홍씨가 성종의 후궁이었기 때문. 연산군과 중종은 성종과 숙용 홍씨 사이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설 교수는 “숙용 홍씨가 낳은 7남 3녀가 연산군과 중종의 배다른 형제이기 때문에 홍일동이 외조부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홍일동은 홍상직의 맏아들이며 홍길동은 서출이어서 남양 홍씨 족보에선 빠졌으나 족보를 모아놓은 ‘만성대동보’에는 홍일동의 배다른 동생으로 기록돼 있다. 홍길동의 배다른 누나 홍씨녀가 낳은 아들 유순도 영의정에 오르는 등 홍길동 주변에는 비호를 해줄 만한 권력층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홍길동이 첨지 행세를 하며 대낮에 관부를 출입해도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는 게 설 교수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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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영월 엄씨의 족보를 조사하면서 홍길동의 배후인물로 알려진 당상관(정3품) 엄귀손과 성종의 후궁이었던 숙의 엄씨가 인척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꺽정 장영기 김막동 순석 등 당시 도적들을 검거한 일시와 포졸들에 대한 포상 기록이 있는데 반해 홍길동은 잡힌 기록만 나와 있습니다. 아마 연산군은 먼 인척 관계였던 홍길동의 기록을 최대한 삭제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홍길동 친인척 가계도’(그림 참조)를 제시하며 “홍길동이 조사를 받던 중 권력층과 밀접한 친인척 관계가 드러나면서 처형을 면하고 유배를 가는 도중 탈출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역사 기록에 의금부 측과 뒷거래를 통해 감형되거나 탈출한 사례들이 나와 있어요. 권력의 비호를 받은 홍길동은 탈출한 뒤 유구(현 일본 오키나와)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설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거의 없어 집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료의 정황을 분석하고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홍길동이 도적이 아닌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허균은 ‘모종의 게이트 사건’을 암시하기 위해 실제 사실 60∼70%와 신출귀몰하는 요소를 가미해 ‘홍길동’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홍길동을 이송할 때 각별한 신경을 썼으며 관리하기가 어려웠다’는 대목을 미뤄봐도 홍길동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죠.”
설 교수는 소설에서 영웅으로 그려진 인물이 실제로는 도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잘못됐다고 믿고 있다. 그는 8월 발표할 ‘홍길동의 외국 활동’ 편에서 일본에서 민중의 영웅으로 불리는 홍기와라가 홍길동 혹은 그의 아들임을 밝힐 예정이다.
설 교수는 ‘홍길동이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옥에서 죽었다’는 등의 반론에 대해 “명문가의 서출이라는 아픔을 딛고 백성을 돕는 의적이었던 홍길동 재조명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