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노주현-김지영 "연기 확 바꿨더니 인기 막 치솟네요"

  • 입력 2002년 1월 29일 13시 59분


《방송가에서 ‘변신’은 최고의 미덕이다. 늘 같은 모습으로 TV브라운관에 나서는 것은 자신의 연기생명을 갉아먹는 자살행위와도 같다. 오늘은 이런 모습으로 내일은 저런 모습으로 안방을 공략해야 연기폭이 넓다고 인정받는다. 하지만 변신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자신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만큼 파격적이어야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 어설픈 변신으로는 오히려 시청자의 눈만 피곤하게 만들 뿐. 여기 중년의 나이에 변신에 성공한 두 명의 남녀 배우가 있다. 중후함을 풍기는 주연급 스타 연기자에서 최고의 푼수연기자로 변신한 노주현(56), 그리고 무미건조한 조연급 연기자에서 톡톡 튀는 스타로 거듭난 김지영(64). 중년의 변신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노주현

50대 중반에 시도하는 변신, 그것도 멋있는 변신이 아닌 철저히 ‘망가지는’ 변신.

지난해초 SBS 일일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홀연히 푼수끼 많은 소방관 역할을 맡으며 어려운 변신을 시도한 탤런트 노주현(55)은 요즘 그 변신 덕에 실로 많은 것을 얻었다.

지난해말 SBS 연기상에서 시트콤 부문 대상을 받은 것은 덤에 지나지 않는다. 중년을 넘어선 생소하기만 했던 ‘팬클럽’까지 생겼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회원수가 200명이 넘는다.

일반인의 경우 50대 중반이면 은퇴를 고려할 나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보수적 생각이 많은 연령이다. 그러나 그는 30여년 연기생활 동안 가꿔왔던 중후하고 멋있는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 던졌다.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역만 맡다 보니 시청자들이 저한테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시청자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변신을 시도했죠.”

처음에는 어색했다. 그가 스스로 설명하듯이 ‘노주현은 왠지 돈 많은 부르주아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첫 회부터 망가지는 모습을 드러내자 기존 팬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에는 “왜 평생 쌓아온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느냐”는 점잖은 조언에서부터 “돈이 그렇게 좋으냐.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느냐”라는 인신공격성 비방까지 나왔다.

그러나 노씨는 스스로의 선택을 소중히 생각하며 1년 내내 변신에 충실했다. 그의 노력에 시청자들도 공감하기 시작했다.

“짜증난다 노주현. 왜 그렇게 먹는 것만 밝히나.”

“생긴 꼴이 너무 우습다. 야만인 노주현.”

최근 SBS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면 시청자들이 실제 노주현이 아닌 극중의 노주현을 비난하고 있다. 그의 변신 노력이 시청자들에게 드디어 ‘중후한 노주현’을 잊게 하고 ‘무능한 소방관 노주현’을 각인시킨 것.

드라마를 시작하고 난 뒤 1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가 다시 옛날처럼 점잖은 역할을 맡으면 더 어색할 것 같다”는 팬들도 많다.

“50대라고 해서 인생에 중요한 변신을 하기에 절대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자신이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연구한다면 얼마든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두려움을 없애고 진취적인 사고를 갖는다면 60, 70대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김지영

10여년 전부터 할머니 역을 맡아와 손자 두세 명 딸린 할머니 역이 더욱 자연스럽다는 탤런트 김지영.

나이에 비해 세련된 이름을 가졌지만 ‘세련’이 아니라 ‘평범’한 배역조차도 그녀의 몫은 아니었다. 억센 사투리로 조금은 투박하고 거친 이미지로 연기 인생을 채워온, 그래서 늘 화려한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졌던 조연급 연기자.

그런 그가 SBS 일요시트콤 ‘여고시절’을 통해 세련된 이미지로 변신에 성공하면서 주말 안방을 사로잡고 있다. 말투와 천성은 바뀌지 않았지만, 세련된 옷을 입고 화려하게 꾸며진 저택의 안주인 역이 이제는 어울릴 정도로 그의 변신은 성공작이라는 평가. 아직 ‘주책 딱지’를 떼어낸 건 아니지만 “섀∼님예(선생님)”로 시작되는 교장 선생님과의 낯간지러운 로맨스 장면에서는 제법 진지함도 묻어나온다.

그는 SBS의 주말극 ‘화려한 시절’에서도 개성 있는 할머니 역으로 등장해 주가를 높이고 있으며 CF와 영화에서도 다양한 연기 변신으로 최고의 절정기를 맞았다. 북적대는 팬클럽도 이젠 전혀 어색할 게 없다.

그가 단순한 조연에서 스타급 연기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철저한 자기개발 노력 때문이라는 게 주위의 평가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서울생활을 해온 그는 국내 모든 지역의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사투리 연습에 몰두했다. 지방촬영 갔을 때마다 시장을 찾아가 시장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투리를 입력했다.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할 때는 경상도 출신으로, 강원도 사투리를 할 때는 강원도 출신으로 오해받았을 정도다. 배역의 성격에 맞게 연기 변신이 가능해진 것은 전적으로 능수능란한 사투리 덕분이었다.

‘여고시절’에서도 그의 경상도 사투리는 경상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하다. 그는 여자연기자로는 드물게 코디네이터를 두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배역을 받으면 평소 매장에서 봐뒀던 물건을 직접 구입하는데 ‘여고시절’에서 자주 쓰는 굵은테 선글라스는 80년대에 쓰던 물건이지만 극중 인물의 개성을 잘 표현할 수 있어 소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장점은 남보다 부지런하다는 것. 평생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매니저 하나 없었지만 대본연습 때 지각 한번 하지 않아 후배 연기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46년간 연기에 쏟아온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하는 2002년. 이순의 나이를 넘어선 지금 안방극장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 잘생긴 아저씨들의 아름다운 푼수연기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안방극장 최고의 미남 스타들을 뽑으라면 탤런트 노주현, 한진희, 박영규, 강석우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들은 준수한 마스크에 중후한 연기로 멜로드라마의 단골 주인공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연기자라는 점이다. 박영규가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포복절도할 연기로 포문을 연 뒤, 강석우가 드라마 ‘아줌마’에서 능청맞은 연기를 보여줬고 이제는 중후함의 대명사인 노주현까지 시트콤에서 코믹 연기로 사랑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칠순의 숀 코너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직도 멜로 영화의 주인공역도 맡지만 50대만 되면 주인공의 아버지로 나서야 하는 우리의 방송 현실 때문에 중년의 미남 스타들은 설 자리가 애매했다.

하지만 이들은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변신에 성공했다. 시청자들은 잘생긴 아저씨 배우가 푼수 짓을 하다 골탕을 먹기라도 하면 킥킥대며 즐거워한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예쁜 여배우와 사랑하는 역할만 고집했다면 아마 지금 안방극장에서 이들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 ‘파이란’에서 인정 많은 세탁소 주인으로 나왔던 아줌마 탤런트 김지영은 여러 드라마에서 특유의 사투리로 걸쭉한 대사를 늘어놓으며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오랜 세월을 드라마에 출연했건만 젊은 시절보다는 오히려 나이가 든 이후 더 사랑을 받고 있다. 말 많고 꼬장꼬장하면서도 속 깊고 인정 많은 아줌마 역을 그녀처럼 맛깔스럽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깐깐한 부잣집 사모님으로 나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역할을 많이 맡아왔던 탤런트 한영숙은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엄상궁 역을 맡아 근엄한 표정연기와 쩌렁쩌렁한 말투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최근에는 그녀의 말투로 “전화 왔사옵니다”라고 하는 휴대전화 벨소리가 나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40대가 훌쩍 넘어서 출연한 영화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 등으로 인기를 모은 후 이제는 안방극장에서 성공한 연극배우 최종원의 경우도 뒤늦게 빛을 본 경우이며 지금 폐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미 머리가 벗겨진 40대부터였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50을 넘겼다 해도 너무 늦었다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요즘 방송가에서 50을 넘은 이들 사이에는 이미지 변신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김영찬·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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