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수주운동원의 고백 "재건축 임원들에 수천만원씩"

  • 입력 2002년 1월 9일 18시 05분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인데, 페어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5년째 건축업체의 재건축 수주 운동원으로 뛰어온 A씨(41·서울 마포구 대흥동)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수주 경쟁을 이렇게 잘라 말했다.

7∼8년간 일반 분양시장의 브로커로 일한 적이 있는 A씨는 현재 전문 재건축 수주 운동 조직의 팀장을 맡고 있다. 건축업체가 타깃을 정하면 곧바로 자신이 거느린 30대 후반 남녀 운동원 10여명과 함께 ‘현장’으로 출동한다.

“첫 로비 대상은 재건축 추진위원회 임원들입니다. 이들이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해준다면 1인당 수천만원도 아깝지 않죠. 그 다음은 동대표와 통반장들입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의 가족행사까지 챙겨주면 마음이 넘어오기 마련입니다.”

과거 공공연히 건네지던 돈봉투는 요즘은 소문을 우려해 투표가 끝난 뒤에야 건네진다는 게 A씨의 설명.

시공사를 선정하는 주민총회가 열리기 2∼3주 전이면 건축업체들이 동원한 홍보요원 수백명이 깔리면서 운동원들의 활동도 정점에 이른다.

A씨처럼 수주 운동원들이 받는 일당은 12만∼20만원 선. 이들은 매일 자신이 맡은 10∼15가구를 방문한다. 운동원들의 최대 목표는 주민의 서면 결의서를 받아내는 것. 이는 시공사 선정투표가 이뤄지는 주민총회 때 참석하지 않는 주민들이 적어내는 위임장으로 대리 투표권인 셈이다.

“초기에는 장당 10여만원에 거래되지만 총회 2, 3일을 앞두고는 100만원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20년 이상된 아파트엔 실소유주들이 다른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아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미리 특정회사를 지지하는 서면결의서를 받아내고 막판에 팔기도 하죠.”

경쟁 업체에 대한 비방도 주요 전술 중 하나. 주민 1명을 포섭해 경쟁사의 사업설명회 때 어려운 질문을 하게 하거나 ‘재정이 어렵다’는 등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도록 하는 것은 단골 수법.

“지난해 서울 서초구 반포 3단지 재건축 수주전에서는 서면결의서가 100만원에 거래됐다는 소문이 들리더군요. 시공사 투표에서 150표 차가 났으니 1억5000만원에 승부가 갈린 셈이죠. 수천억원대의 사업비에 1억, 2억원은 ‘새발의 피’인데, 역시 돈을 써야 합니다.”

A씨는 올해는 부동산 투기 열풍과 맞물려 재건축 수주전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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