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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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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근식 황경식 엮음/ 408쪽 1만5000원 삼성경제연구소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경제학)와 황경식 교수(서울대·철학)가 편집한 이 책(부제:자유주의의 의미, 역사, 한계와 비판)은 바로 이런 자유주의의 역사적 위상과 현재적 의미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상처받은 자유주의’를 치유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철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그리고 법학에 이르는 10명의 인문 사회과학자들은 근대 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치밀하게 해부하고 그 공과를 평가한다.
이 가운데 머리에 놓인 이근식 교수의 글 ‘자유주의와 한국사회’는 책 전체를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 시민사상의 핵심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전통적 계급사회를 해체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건설한 건강한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 고전적 자유주의는 최근 풍미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사뭇 다르다.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유, 인권, 관용을 중시하는 반면에 자본의 세계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해 인간 상실의 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이 책이 갖는 커다란 장점은 자유주의에 대한 담론들을 학제적으로 다채롭게 접근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이 서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발전돼 온 만큼 자유주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하며, 이 책은 바로 이런 자유주의의 다양한 조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자유주의를 둘러싼 다양한 비판과 반비판을 두루 살펴보고 있는 것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이다. 예를 들어, 주류 자유주의의 한계(서병훈 교수),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황경식 교수), 폴라니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비판(김균 교수) 등에 관한 논의는 이 책에 자유주의 교과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더욱이 마지막 장에서 조우현 교수는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경제·사회정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개혁적 자유주의’라 명명되는 조 교수의 전략은 21세기 네트워크화 시대에 성장과 형평이 조화되는 인본적 경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모델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상을 세계화 및 정보화의 흐름 속에서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미래에 대해 작지 않은 시사를 던져준다.
하지만 이 책에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자유주의 담론들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자유주의가 누락된 것이 아쉽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가 적잖이 다르듯이, 문화적 자유주의는 따로 독립해 검토할 만한 가치를 갖는다. 우리사회의 경우 그 빈곤 속에서도 자유주의의 명맥이 주로 문화적 자유주의자들의 고투(苦鬪)에 의해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이런 아쉬움은 작지 않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한 토론도 논란거리다. 그것이 고전적이든 현대적이든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정의 하나는 시장에서의 경쟁의 자유다. 이 경쟁 매커니즘에 내재된 효율성과 민주적 절차를 적극 승인하더라도 그것이 낳는 사회적 불평등은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케인즈주의 경제학과 복지국가 정치학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각의 차이가 다소 없지 않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대체로 자유주의가 21세기 우리사회를 위한 이념적 대안의 하나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사적 흐름이 자율성과 유연성 확산에 있는 한 이런 전망은 온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율성과 유연성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평등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의 탐색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기적 개인주의의 ‘거짓 자유’를 넘어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되는 ‘참된 자유’를 실현하는 것, 바로 이것이 현재 자유주의가 직면한 이론적 고뇌이자 실천적 과제일 것이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