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재경부의 ‘배짱’ 탓에…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35분


재정경제부가 도입하려 했던 ‘장기주식저축펀드(가칭)’의 내용을 접한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했다. 침체된 증시를 살리기 위해 마련했다는 이 상품은 주식투자를 할 경우 소득세를 공제해 주는 것(세액공제형)과 투자손실을 보면 연말정산 때 이를 보전해 주는 것(손실보전형)으로 돼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파격적인 특혜상품이다.

워낙 무리한 내용이다 보니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본인 책임 하에 이뤄진 주식 투자의 손실 부분을 왜 국민 세금으로 보상해줘야 하느냐’는 비난 여론이 거세진 것.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문제를 제기했고 12일의 당정 협의과정에서도 “세액공제형은 모르지만 손실보전형은 재고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재경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2일 “세액공제형과 손실보전형 두 종류의 장기주식저축펀드가 곧 나온다”고 공표했다. 게다가 재경부는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투자신탁회사에 이 상품에 대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을 독려했다. 정부에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업계는 이 상품의 공동약관을 만들고 이미 판촉활동을 벌여왔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문제가 있다”며 제동을 건 것을 재경부는 마이동풍으로 흘려들으며 기정사실화하려 든 것. 세금 감면에 관한 결정은 국회의 고유권한이어서 이를 아예 무시하는 듯한 재경부의 ‘배짱과 오만’에 국회의원들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여야는 결국 16일 손실보전형 상품을 백지화하기로 합의했다.

재경부에 등 떠밀려 약관을 만들고 상품 판촉을 해온 투신업계는 하루아침에 투자자들에게 거짓말을 한 꼴이 된 것.

재경부는 뭐가 그리 급했을까. 주가를 떠받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원칙이나 절차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주가가 오르기를 바라는 증권회사 직원들조차 재경부의 이런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이훈<금융부>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