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오발인가 테러 참사인가

  • 입력 2001년 10월 5일 01시 20분


4일 흑해 상공에서 공중폭발 후 추락한 러시아 시비르항공사 소속 투폴레프(TU)-154 여객기의 사고 원인은 테러일까 아니면 미사일 오발에 의한 단순 사고일까.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참사로 인해 테러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해군이 훈련도중 발사한 미사일에 의해 격추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미사일 오발 사고 가능성〓 여객기 추락사고 발생 뒤 곳곳에서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의 한 관리는 사고 몇 시간 뒤 사고 현장 인근의 우크라이나군이 오발한 미사일이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위성 정보 등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크림 지역의 흑해연안에서 우크라이나군이 군함과 항공기를 동원한 방공훈련을 하고 있었다”며 “당시 이곳에서 지대공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흑해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덧붙였다.

곧 이어 우크라이나 해군 관리인 이고리 라리체프가 “사고기는 흑해 해상에서 군사 훈련 중이던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에 격추돼 추락했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세바스토폴에 있는 우크라이나 흑해 함대 대변인도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 지역에서 방공훈련을 실시하던 중 사거리 400㎞인 미사일이 발사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날 무인 비행선을 표적으로 미사일 40여기를 발사하는 훈련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가능성〓올레크산드르 쿠즈무크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미사일 오발 사고 가능성이 제기된 직후 “당시 군사훈련에 사용된 모든 미사일들은 궤도를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폭발하게 돼있다”며 사고기는 절대 미사일 오발로 추락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당시 군사훈련 지역인 크림 지역의 케이프 오누크와 사고 지점은 250㎞ 떨어져 있지만 미사일들의 표적은 불과 35㎞ 떨어져 있었다”며 “당시 발사된 미사일들은 전부 표적에 적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더구나 우크라이나 공군 기록에는 당시 훈련 지역 상공에 어떠한 민간기도 나타난 적이 없다”고 미사일 오발 관련설을 부인했다.

또 미하일 카시야노프 러시아 총리도 우크라이나군 훈련은 민간 여객기 항로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고 밝혀 테러 가능성을 시사했다.

카시야노프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여객기의 정확한 추락 원인은 아직 단정할 수 없으며 여객기 추락 원인을 밝히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사고 직후 크렘린궁에서 유럽 법무장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테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고 여객기의 출발지가 이스라엘이며 승객의 전부 또는 대다수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점, 사고기 항공사가 러시아 소속이라는 점도 이번 폭발이 테러에 의한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한 요인이었다.

러시아의 경우 여객기 사고 하루 전인 3일 러시아 내 이슬람교 최고 지도자인 탈가트 타주딘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다종교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항상 테러 위협에 노출돼 있다.

러시아가 이슬람권인 체첸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데다 최근 푸틴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대(對) 테러 전쟁에 대한 지원을 약속해 러시아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한 것도 테러 가능성이 제기된 요인이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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