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지방의원 툭하면 행정 '딴죽'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39분


수도권에 있는 K시는 98년 7월 시집행부가 출범한 이후 시의회와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집행부는 지난해 말 도시녹지경관 조성과 보육시설 지원, 시정백서 발간 등 117개 사업에 대한 예산승인을 요청했다. 그러자 시의회는 전시 및 선심성 예산이라며 전액 삭감했다.

시집행부측은 “시민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필요한 사업예산을 시의회가 무차별 삭감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시집행부는 또 시의회가 올해 시장 판공비를 사용한도(1억9300만원)의 48%에 불과한 9200만원에 묶어놓은 것에 대해서도 시장이 업무추진을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시 관계자들은 “시의회가 시장과 다른 정당소속 의원들에 의해 장악돼 있어 견제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K시의 시장도 “시의회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시정을 펴나가는데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의회측은 “시장 판공비중 사전선거운동 등에 이용될 소지가 있는 불필요한 부분을 삭감했다”고 해명했다.

지방의회가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업에 예산지원을 할 수 있도록 조례를 통과시켜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사는 경우도 있다.

강원도의 C시의회는 최근 전직 시의원들의 친목모임에 시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시정을 감시해야 할 의회가 자신들의 사적인 모임에 시예산을 사용토록 하려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월권”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문제의 친목모임에 예산을 편법지원할 수 있도록 조례안을 일부 수정해 재의결했고 시집행부도 시의회의 눈치를 보느라 결국 조례안을 공포했다.

지방의원들이 지역구 예산배정 등을 둘러싸고 벌이는 행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북도의 공무원 C씨는 “해변축제나 체육대회 등 마을단위 소규모 행사에도 예산을 지원해달라는 도의원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며 “뒤탈을 염려해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방의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아예 예산배정시 도의원의 경우 지역구 사업용으로 1인당 1억5000만원, 시 군의원은 5000만∼2억원씩을 책정해놓고 있다. 또 자질을 의심케하는 지방의원들의 행동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경북의 한 군에서는 올해 2월 군의회 P의장이 술에 취해 K군수 집무실을 찾아가 “중앙정부에서 예산도 제대로 따오지 못하면서 군예산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의장 대접을 소홀히 한다”며 K군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제주도 간부공무원 A씨는 “도의회의 행정감사때마다 일부 도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인격을 모독하는 발언을 할 때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방의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방선거에 재출마한 의원들에게 ‘보험금’ 성격으로 돈을 제공하고 단체장의 외유때 함께 가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한 광역단체의 경우 98년 지방선거때 영향력있는 도의원들에게 1인당 300만∼500만원씩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지방의원들이 지나치게 지역구 사업에 매달리지 않도록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며 “특히 시집행부와 의회간 마찰을 막기 위해서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기대기자·춘천·제주〓최창순·임재영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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