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마이너리그

  • 입력 2001년 4월 13일 19시 20분


은희경의 새 장편 ‘마이너리그’는 이른바 ‘58년 개띠’들의 이야기이다. 역시 이 ‘58년 개띠’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작품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 세대가 성장하면서 공유했던 지나간 70년대와 80년대의 풍속과 역사들을 다시 만났고, 기억의 현기증이라 이름 붙일 만한 달콤함과 쓰라림이 뒤섞인 어떤 아찔한 기분 속에 빠져들었다.

양소희라는 한 여자를 둘러싸고 네 동창생의 성장사가 전개되는 전반부 내내 나는 삶에 대한 환멸(어쩌면 간절한 동경의 다른 이름일) 아래 냉소적 거리를 유지해 나가는 일인칭 화자 김형준과, 아마도 그의 유일한 정신적 동지였을 소희와의 정신적 교감에 깊이 공감했고 그들의 어긋남을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 후, 이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 소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이 소설은 전혀 다른 소설이 된다.

은희경의 소설답게 이 작품을 일관하는 기조 역시 냉소주의이다. 그러나 전반부의 냉소주의와 후반부의 냉소주의는 그 성격이 다르다. 전반부에서 화자 김형준은 냉소주의자이지만 작가는 냉소하지 않는다.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런데 후반부에서 김형준이 더 이상 냉소주의자가 아닌 평균적 속물이 돼 가면서 이 인물까지 포함해서 작가는 입심과 요설의 힘으로 모든 대상을 냉소와 풍자의 표적으로 삼는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문제적 인물들이 숨쉬던 하나의 비극적 공간이었던 세계가 후반부에서는 그저 속물들이 판치는 요지경 속으로 바뀌어 버린다. 소설적 긴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작품 속에서 소희의 죽음은 바로 ‘의미있는 세계’의 종언에 필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희가 죽어간 80년대 후반 무렵은 공교롭게도 이 ‘58년 개띠’들이 30대에 접어들어 그 ‘젊은 날들’이 기울어 가는 시점과도, 모든 진지한 것들이 한꺼번에 빛을 잃어 가던 환멸의 세기말이 시작되는 시점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 ‘마이너리그’라는 제목이 붙여졌다고 해서, 이 소설을 이른바 ‘소외된 것들의 귀환’ 운운으로 이해하는 것은 작가의 전략에 속는 것이다. 이 소설의 일관된 주제는 환멸이다. 풍자와 냉소조차 번거로운 전면적 환멸이다.

‘메이저냐 마이너냐’라는 것은 잘못된 문제 제기다. 이 작품의 안타고니스트(상대역)는 ‘메이저리거’들이 아니라 이 속악한 세계 그 자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마이너리그’라는 선정적인 통속소설 제목이 당의(糖衣)처럼 감싸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작가가 입심과 요설을 동원해 적당히 그럴 듯한 상품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90년대에 출발한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두드러지는 그의 요설과 입심은 ‘환멸의 상품화’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을 그저 ‘58년 개띠’들의 범속한 연대기에 머무르게 한 것은 작가 은희경이 깊숙히 감추어 둔, 환멸보다도 더 강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은희경 장편소설 250쪽 7500원 창작과비평사

김 명 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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