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사람·세상]우울한 '弱者에 의한 弱者비하'

  • 입력 2001년 4월 13일 18시 59분


YWCA 김숙희 회장이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 아니면 ‘병자’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장애인 비하발언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기독교 단체의 회장이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 단체의 장이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것이었다. 둘 다 도저히 나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정치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근대성의 구조’(민음사·1999년)를 보면 여성이나 장애인, 동성연애자, 소수민족은 이들이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다수와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 2등 시민으로 강등되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배제시키고 남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을 정상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배제된 사람들이 ‘비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사회를 ‘다름’을 인정하는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여성’과 ‘장애인’은 각각의 입장에서 다를지 모르지만 사회의 중심 자리에서 배제된 ‘약자’라는 입장에서는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발언은 한 약자가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약자에게 돌을 던진 셈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김 회장의 발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자신의 주저(主著) 중 하나인 ‘탐구’(새물결·1998년)에서 신을 ‘타자(他者)’로 정의한다.

“예수는 확실히 눈에 보이고 실재하는, 오히려 볼품 없이 왜소한 타자이며 그리고 우리로서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그러한 타자이다.”

종교인이라면 그러한 타자 안에서 신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장애인 안에, 여성 안에, ‘우리’가 소외시키는 수많은 사람들 안에 신이 있음을 믿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 아닌가.

사회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또하나의문화·1998년)에서 타자화된 존재로 살아온 여성들을 고찰하며 이렇게 지적한다. “주변에 있는 여성들은 그나마 자신들에게 부여된 조그마한 ‘중심’을 놓치게 될까봐 늘 불안해하면서 더욱 극성스럽게 그 ‘중심’을 지키려고 해왔다.” 아마 이것은 ‘여성의 적이 여성’인 현상, 사회적 타자의 적이 또 다른 사회적 타자가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일 것이다.

김 회장은 과연 자신이 어떤 ‘중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몸이 건강하다’는 것이 조금 더 중심에 가까워질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늦게나마 YWCA에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기독교인들이 소외된 자들을 버리고, 여성이 다른 약자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의 희망은 어디에 찾을 수 있겠는가.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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