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전후보상소송 기각…日법원 "개인청구권 인정못해"

입력 2001-03-26 18:34수정 2009-09-2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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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지법은 26일 태평양전쟁 때 군인 군속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한국인 피해자와 유가족 등 4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아시아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보상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재판장 마루야마 쇼이치·丸山昌一)는 이날 “국제법상 가해국에 대한 피해자 개인의 손해 배상 청구권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일부 원고가 요구한 미지불 임금 보상 건에 대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일본의 국내법에 따라 권리가 소멸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고측과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한국의 전쟁 피해자와 유가족 등은 91년 12월 “개인 보상권은 한일청구권 협상과 관계없이 아직 유효하다”며 1인당 2000만엔의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33회의 공판을 거쳐 9년 3개월만에 내려진 것이다. 이번 소송은 △위안부로 강제 동원된 할머니 8명이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점 △미지불 임금의 실체가 부각된 점 △개인 보상을 요구하는 법적 근거로 일본이 저지른 ‘비인도적 범죄’가 거론된 점 등으로 국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日사법부 전쟁범죄에 면죄부"▼

“원고측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측 부담으로 한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비행기삯을 어렵게 마련해 수십차례 현해탄을 오가며 벌여온 10여년의 길고 험난했던 법정 투쟁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26일 오전 10시 도쿄지법 713호 법정. 재판부가 서둘러 자리를 뜨자 법정은 곧 통탄과 울분이 터져나오는 장소로 변했다. 변호사석 뒤에 앉아있던 한복 차림의 원고 10여명은 법정 관계자들의 제지를 물리치고 일어서서 울부짖었다.

“도대체 이런 판결이 어디 있느냐.” “내 아버지 유해를 내놔라.” “이게 일본이냐.”

10여분간 이런 상태가 계속됐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김종대(金鍾大)회장은 “비인도적 판결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했으며 원고측 관련자들은 ‘아리랑’을 합창했다.

다카키 겐이치(高木健一)변호사는 원고들에게 “국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이번 소송에서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었다”며 “정말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있던 일본인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이들은 절규하는 원고들 앞에서 일본 사법부의 처사를 대신해 사죄라도 하는 듯 “미안합니다” “힘을 냅시다”는 말을 연발했다.

재판과정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 재판부는 군인 군속 위안부 등이 강제로 연행돼 고통을 당했다는 점은 일부 인정했다. 또 공판과정에서 원고들이 제기한 주장은 국제 인권단체가 일본정부에 대해 개인에게도 보상을 해주도록 촉구하는 보고서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소송에 힘을 얻어 제기된 소송도 70여건이나 된다.

재판후 기자회견장에서 김종대회장은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며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의 소리를 높였다. 양순임(梁順任)씨는 “일본의 잘못을 부정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라고 믿고 싶었는데 오늘 판결을 보니 일본 사법부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위안부로 동원됐던 심미자(沈美子)할머니는 일본의 침략 사실을 외면하는 왜곡된 교과서문제를 거론하며 문부성과 우익을 강하게 비난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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