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과 한국경제

입력 2001-03-21 23:03수정 2009-09-21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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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의 거목’ 현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삶은 그 자체가 현대그룹의 역사였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 경제와 한국 산업이 걸어온 발자취이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해외건설 시장 진출, 세계 최대의 조선소 건립, 세계를 누비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자동차의 제작….

전쟁의 상처를 딛고 폐허에서 맨주먹으로 산업을 일구어야 했던 시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정주영의 ‘불도저식 경영’은 도로에서 공장에 이르기까지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계인이 찬탄해마지 않는 70년대 한강의 기적은 걸출한 기업인 정주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해외 건설시장 진출〓60년대 초반 한국경제는 말 그대로 암울한 상태였다. 산업 기반시설은 열악했고 국민의 생활수준은 보잘것없었다.

62년부터 본격화된 경제개발계획에 맞춰 정주영의 현대건설은 한국 최대의 다목적댐인 소양강댐을 비롯한 수력발전소 공사와 삼척 영월의 화력발전소 공사를 맡았다.

20세기의 대 역사라 불리는 주베일 산업항이 완공된 모습.

65년에는 과감하게 한국 최초로 해외건설 시장 개척에 나섰다. 태국에서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고 괌에서는 주택건설, 베트남에서는 항만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향후 중동 붐을 타고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는 발판도 이때 마련됐다는 평가.

산업의 동맥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은 경부고속도로 428㎞의 초단기 완공으로 현실화됐다. 68년 2월에 착공해 당초 3년 공기인 공사를 2년5개월 만에 완공했다. 당시 국내에 있던 중장비 수보다 더 많은 장비가 총동원됐다.

해외건설 사업은 베트남 호주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를 거쳐 70년대 후반 중동에서 절정을 이뤘다. 1억달러 이상의 대형공사를 잇달아 수주해 한국의 외환부족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다.

이 기간에 현대건설과 현대종합상사가 10억달러 수출탑을, 현대중공업이 9억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면서 ‘수출 10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라는 한국경제의 대기록을 선도했다.

1984년, 유조선으로 방조제를 완성하며

▽조선과 자동차 진출의 승부수〓60년대 말 한국의 최대 선박건조 능력은 10만여t. 이런 상황에서 정주영은 수십만t 규모의 초대형 조선소를 세우는 계획에 착수했다. ‘선박이란 물위를 떠가는 탱크’일 뿐이라는 각오로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다.

현대중공업은 울산조선소 기공 8년 만인 80년 초 조선분야 세계 10위에 올랐고 작년 7월 현재 42억달러어치(86척)의 선박을 수주해 한국 조선업계의 해외 수주고 가운데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70년대 후반, 산업구조 고도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주영은 자동차 산업을 대안으로 택했다. 76년 최초의 국산 고유모델인 포니 승용차로 시작된 한국 자동차의 개발역사는 86년 엑셀의 대히트라는 개가를 이뤄냈다. 미국 진출 첫해에 20만3000여대를 수출한 데 이어 87년에는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를 누르고 미국시장의 수입소형차 판매 경쟁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의욕적인 말년의 행보와 그룹 몰락의 비애〓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남북경협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던 89년엔 북한을 방문해 경협의 물꼬를 텄다.

98년엔 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는 이벤트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현대그룹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건설 등 주력사의 유동성 위기에 휘말려 몰락 일보직전이긴 하지만 국민 경제에서 현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현대의 1, 2차 협력업체는 1만7000여곳이고 직접 고용인원은 11만명. 여기에 고용유발 인원까지 합하면 그 수가 30만명으로 불어난다. 기업인 정주영은 늘 시대변화보다 한 발 앞서 승부수를 던졌고 대개의 경우 그의 선택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바쳐 키운 거함 ‘현대호’는 다음 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시대흐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침몰 직전의 위기에 빠져있다. 기업인으로서 불운했던 말년은 탁월한 기업인으로서 그의 무게와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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