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밀착취재]LG전자 노용악 부회장 "중원 누비며 세계제패 꿈꾼다"

  • 입력 2001년 3월 15일 18시 42분


12일 실시된 LG전자 인사에서 노용악(盧庸岳·61) 중국 지주회사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지법인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은흔치 않은 일. 하지만 LG그룹 내부에서는 “노부회장의 인품과 능력,회사 경영에 기여한 공적 등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영업 파트의 후배 임원들은 국내외 마케팅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온 ‘큰 형님’의 승진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한국 전자산업의 산증인’ ‘해외 영업의 대가’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 대표 1호’.

노부회장 앞에 따라붙는 다양한 수식어는 36년간 전자제품 영업의 최일선에서 뛰어온 그의 경력을 잘 말해준다.

라디오 선풍기 흑백TV에서 출발해 첨단 디지털 가전제품을 파는 지금까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탓일까. 노부회장은 승진 사실을 통보받고도 담담해했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든 회사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덕인 것 같다”면서도 “직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맡고 있는 일에 충실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그는 78년 금성사(현 LG전자)가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판매법인을 설립했을 때 초대대표로 임명돼 낯설게만 느껴졌던 미국 가전시장을 뚫었다.

영업담당 임원으로 일하면서 주로 미국 등 선진국 시장과 씨름하던 노부회장은 95년 10억인구의 중국을 다음 상대로 꼽은 뒤 훌쩍 중국 북경으로 날아갔다. 그는 “한국 기업이 중국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잠재력이 엄청난 시장인 동시에 최대의 경쟁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일류업체들이 앞다퉈 중국에 진출하고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성공하면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

“들판의 호랑이는 펄펄 날뛰기 때문에 잡기 힘들지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역시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굴안에서 호랑이와 싸워 이기면 호랑이의 가죽을 얻는 것이고, 지면 잡아먹히는 것이고…”

이런 각오로 중국시장에 뛰어든 노부회장은 6년만에 LG전자 중국법인을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3개 법인으로 구성된 중국 지주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0억달러이고 TV 전자레인지 에어컨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한국 내수매출보다 많다. 모든 법인이 흑자를 냈으며 심양 TV법인은 135만대를 수출해 중국 전체 수출량(1010만대)의 13%를 차지한다.

노부회장의 전략은 철저한 현지화와 장기적 안목의 마케팅.

그는 “중국 소비자들은 한 제품을 구입할 때 적어도 다섯군데 정도는 돌아보고 결정할 정도로 꼼꼼하다”며 “개별제품과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니까 입소문이 퍼져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제품디자인연구소를 만들어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길거리 농구대회를 열어 중국 젊은층을 공략한 것은 현지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

노부회장은 요즘도 틈만 나면 북경 뒷골목의 시장이나 박물관 등을 찾아다니며 중국인들의 삶과 문화를 익히려 애쓴다.

“이제는 세계화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남들이 진출하니까 나도 간다’는 식으로 무작정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서는 허탕만 치기 십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시장은 우리 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으로 적격입니다”

노부회장은 “현지 매출액을 조금 더 늘리는 정도가 목표라면 굳이 부회장이 상주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중국의 한복판에서 우리 기업의 특성에 맞는 세계화 전략을 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노용악 부회장은 이런 사람▼

―61세

―6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65년 금성사 입사. 수출본부장, 미국판매법인

초대대표, 수출 영업담당 임원 등 역임.

―95년 중국지주회사 사장

―경영철학:임전불패(臨戰不敗)〓경쟁에서는

이겨야 한다.

―후배 직장인에게 당부:어떤 자리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자.

―좋아하는 음식:중국 호남성 요리(매운 맛에 매력).

―좋아하는 술:중국 술 ‘주귀주(酒鬼酒)’(돗수가 54도로 높지만 숙취가 없다고).

―취미:중국 전통예술 작품 감상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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