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칼럼]박세영 서치캐스트대표/21C 로빈슨크루소

  • 입력 2001년 3월 12일 11시 53분


집에 핸드폰을 놓아두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허둥대다가 빠뜨리고 나온 것이다. 집에 다시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핸드폰 없이 그냥 하루를 지내보기로 했다.

이때, 먼저 닥쳐온 느낌은 불안감이었다. 특히 막히는 출근길 자동차안에서 그 불안감은 더 했다. 마치 어디선가 나를 찾고 있는데 나는 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사무실을 떠나 바깥에 돌아다니려니 그 불안감은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오늘따라 전화할 일은 왜 그리도 많은지. 게다가 길거리에 그 많던 공중전화는 다 어디로 가고 눈에 띄지 않는지. 그 불안감은 급기야 사무실로 집으로 나를 찾는 전화가 없었느냐 혹은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었느냐 하면서 몇 번씩 전화하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그 불안감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무인도에 혼자 떨어졌을 때 가지는 그것일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나만 고립되었다는 느낌과 세상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고립감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왔다. 두 번이나 오스카상을 수상하고 이 작품으로 세 번째 오스카상을 노리는 톰 행커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이미 미국에서 첫 주에 3985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프랑스에서도 첫 주에 5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는 소식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출장 길에 올랐던 한 남자가 비행기 추락으로 무인도에 남겨지는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집, 음식 등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현대사회와 고립된 채 혼자 4년을 살면서 자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로빈슨크루소 이야기이다. 그런데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촌스러운 내용의 이야기가 왜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전세계인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

물론 톰행커스의 훌륭한 연기나 '포레스트 검프'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실력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보다 이 영화가 인간의 고립감에 대해 서로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의 생각을 잘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두 가지 감정의 첫째는 인터넷이나 통신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한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그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산골 같은 곳에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매일 숨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그 휴대폰이라는 것 때문에 숨어 있을 수가 없다. 둘째는 그런 통신망에서 제외되었을 때 느끼는 고립감이 그것이다. 현대인은 잠시 핸드폰이나 인터넷에서 멀어지면 심리적으로 금방 로빈슨크루소가 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떨어져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톰행커스도 손에 핸드폰만 하나 있어서 바깥 세상과의 통신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그 물리적인 고립에서도 심리적인 두려움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보급율은 이미 33%를 넘어서 일본과 영국을 앞지르고 있다. 휴대폰 보급율 역시 45.1%를 넘어 미국과 일본을 앞지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보다도 이런 통신 분야가 유독 강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남이 하는 일은 다 따라해야 되고 어떤 그룹에서 소외되기를 특히 싫어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통신시장에 반영된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에는 신 로빈슨크루소를 꿈꾸면서 또 두려워하는 수많은 후보자들이 많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되고 있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며 과연 우리나라의 신 로빈슨크루소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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