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소액예금자 곳곳서 문전박대

  • 입력 2001년 3월 1일 18시 36분


한빛은행의 통장을 갖고있는 김모씨(33)는 최근 은행이 알려온 내용에 영 못마땅해 하고 있다. 은행이 이달 18일부터 수시입출금식 통장에 대해 잔액이 50만원 미만인 날에는 이자를 안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4%밖에 안되는 이자를 못받는 것이 그리 아깝지는 않았지만 은행으로부터 홀대를 받는 것 같았던 것.

제일은행 홈페이지에는 지난해말 도입한 소액계좌 유지 수수료에 대한 원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예금잔액 10만원 미만일 경우 월 2000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받고 있기 때문. 소액통장은 개설해주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은행경영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서민에게 지운다면 거래은행을 바꾸겠다는 의견을 여기 저기 띄워놓았다.

그러나 은행들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내놓고 말은 못하고 있지만 ‘돈 안되는 고객은 떠나주면 더 고맙겠다’는 태도다. 계좌유지수수료 제도와 무이자통장제도는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서울은행이 19일부터 3개월 평잔 20만원 미만 예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주지않기로 했다. 국민 주택 신한은행 등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이같은 제도를 상반기중 도입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돈안되는 고객은 버린다’는 정책은 이미 서구에서 일반화돼있다. 은행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한국과 일본에 뒤늦게 불어닥치고 있는 것. 일본의 경우 도쿄미쓰비시은행이 처음으로 1월부터 월말예금잔액이 10만엔 이하로 떨어질 경우 315엔의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주택은행 윤재관전략기획팀장은 “고객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가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윌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도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주문한 손님과 물한잔 마시고 가는 손님을 똑같이 대접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은행 고객의 90% 가량이 은행 입장에서는 ‘돈이 안되는 고객’이라는 게 은행 자체 분석이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직원이 입출금 한 건 처리하는 데 드는 원가는 1500원 남짓. 여기다 통장을 발급하고 거래자료를 보관하는 등 계좌를 유지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소액예금자 위주로 영업해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이 은행의 계산이다.

최근 은행에서 입출금용 객장 면적이 계속 줄어들고 직원도 줄어들며 고객의 줄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주택은행은 은행 지점장들에게 창구 고객을 붙잡고 일일이 현금입출금기(ATM) 앞으로 안내하는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로인해 약 1300명의 창구직원을 추가투입하는 효과를 얻었다. PC뱅킹을 적극 권장하는 것도 손님을 창구에서 쫓아내기 위해서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IMF이후 은행 인원이 크게 줄고 1인당 영업이익을 2억원까지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뜨내기 손님’은 떠나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불편을 느끼게되면 자연히 떠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은행이 ‘금융기관’에서 ‘장사꾼’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경영전략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않다.

많은 고객들은 “은행이 경영기법을 선진화하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손쉽게 수익을 올리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것이 바로 선진금융”이라고 대답한다.

한국금융연구원 손상호박사는 “고객입장에서도 은행이 수익성을 간과해 부실화될 경우 또다시 거액의 혈세가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은행은 직원들의 마인드까지 개조해 단순한 제도도입이 아니라 실제 수익성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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