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요원 헨슨 체포]"국가를 배신한 스파이" 美대륙 발칵

  • 입력 2001년 2월 21일 18시 39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된 FBI의 루이스 프리 국장은 물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은 일제히 이 사건을 “국가에 대한 배신”이라고 개탄하며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언론도 종일 이 사건만을 보도하다시피 했다.

FBI는 핸슨씨가 그 동안 구 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KGB)와 후신 정보기관인 SVR에 미국의 전자정찰수행방법과 이중간첩운용계획, 미 정부가 파악한 KGB활동분석보고서 등 최고 기밀문서를 전달해 왔다고 발표했다.

핸슨씨는 또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중 간첩으로 포섭한 미국 내 KGB 요원 3명의 명단을 러시아측에 밀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 중 2명은 모스크바로 돌아간 뒤 결국 처형됐고 나머지 1명은 장기간 옥고를 치렀다.

핸슨씨는 그 대가로 최소한 현금 65만달러 이상과 다이아몬드, 해외계좌에 예치된 80만달러 등 14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FBI는 밝혔다. 유죄가 인정되면 그는 무기징역이나 사형 또는 자신이 받은 금품의 배인 280만달러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FBI에 따르면 그가 처음 KGB 요원들과 거래를 시작한 것은 1985년 10월. 그는 일반 우편으로 KGB측에 편지를 보내 정보와 금품을 교환할 것을 먼저 제안했다. 자신의 신분은 ‘B’라고만 밝히고 편지 겉봉에는 ‘라몬 가르시아’라고 썼다.

그 후에도 그는 ‘짐 베이커’ ‘G 로버트슨’ 등의 이름을 썼을 뿐 구체적인 신원은 밝히지 않아 러시아측은 핸슨씨가 체포될 때까지 암호명 ‘B’의 정확한 신원을 알지 못한 채 15년간 거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핸슨씨는 러시아측과 교신에 문제가 생길 때 “계속 이야기하려면 워싱턴타임스지에 ‘1971년형 다지 디플로매트. 엔진 정비 필요. 1000 달러’라는 광고를 내라”고 접선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주로 워싱턴 근교의 공원 숲 속에서 정보와 금품을 주고받았다. 러시아측이 ‘물건’을 갖다 놓았다는 신호로 접선 장소에 흰 반창고를 가로로 붙여 놓으면 핸슨씨는 이를 받았다는 신호로 흰 반창고를 세로로 붙여 놓는 방법을 사용했다.

핸슨씨는 러시아측이 전달받은 컴퓨터 디스켓에 아무 내용이 없다고 불평하자 “40 트랙 모드를 사용하라”고 자료 해독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는 것. FBI는 “이 디스켓은 정확한 암호를 사용치 않으면 아무 것도 저장이 안 된 것처럼 나타나게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핸슨씨의 간첩행위가 초래한 국가안보상의 피해를 조사하고 FBI의 보안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FBI와 CIA 국장을 역임한 윌리엄 웹스터에게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이 사건은 94년 발생한 CIA 요원 올드리치 에임스 사건에 이어 미 역사상 두번째로 심각한 간첩사건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수사가 진전될 경우 그 파장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미 언론은 보고 있다.

▼헨슨은 누구…회계학 석사출신 FBI서 러 스파이 색출담당▼

간첩 혐의로 체포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 로버트 필립 핸슨(56)은 시카고 출신으로 일리노이주 녹스단과대에서 화학학사 학위(66년)를, 노스웨스턴대에서 회계학석사 학위(71년)를 받았다. 러시아에 대해선 이미 대학 때부터 관심을 갖고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71년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 잠시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72년 시카고 경찰의 특별수사관으로 전직했다. FBI에 들어간 것은 76년으로 처음엔 인디애나주의 화이트칼라 범죄를 수사하다가 78년 뉴욕 지부에 배속된 이후 러시아 관련 첩보 임무를 맡게 됐다. 그는 그후 뉴욕과 워싱턴에서 미국 내 러시아 스파이의 활동을 감시, 색출하는 일을 담당하며 이에 관한 최고 기밀을 다뤄왔다.

그는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주 비엔나에 부인 및 자녀 6명과 함께 살아 왔다. 주민들은 그가 모범적인 시민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며 그의 혐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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