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의 캐릭터열전]폭력, 인간의 내면을 여는 열쇠

입력 2001-01-25 20:03수정 2009-09-2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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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만뒀지만 결혼 전까지만 해도 이따금씩 주먹싸움을 즐겼다. 무슨 대의명분이나 의협심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사는 게 영 시시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때면 괜히 사람 많은 술집에서 옆자리의 낯선 녀석에게 시비를 걸어 일단 한방 날리고 보는 것이다.

싸움 솜씨는 형편없는 편이어서 대개 한 대를 때리면 두 대를 맞는 식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 피를 흘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덕분에 유치장 신세도 많이 졌다. 그때마다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담당형사가 피실 피실 웃으며 철창 문을 따주는 바람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휘파람을 불며 나오곤 했지만.

육체적 폭력의 행사에는 확실히 자기정화 내지 자기해방의 기능이 있다. 이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영화로는 <파이트클럽>을 들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 역시 로드무비의 형식 안에 이 주제를 솜씨좋게 요리해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방면의 선생님은 역시 샘 페킨파다. 특히 그의 걸작소품 <어둠의 표적>에 등장하는 나약한 수학자 데이비드 섬너(더스틴 호프먼)는 이 주제를 가장 격렬하게 변주해낸, 잊을 수 없는 캐릭터로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섬너는 학문적으로는 세계적 수학자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영 무력하고 소심한 인물이다. 불쾌한 일을 당해도 애매하게 웃어넘기는 도덕군자이며 아내의 빵빵한 히프에 지레 질려버리는 고개숙인 남자다. 한마디로 한심한 책상물림인 것이다.

<어둠의 표적>은 이 나약한 지식인으로 하여금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끝까지 밀어붙이며 그의 반응과 변화를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잔인한 영화다.

섬너는 노골적인 모욕도 감수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웃음을 보인다. 심지어 동네의 건달들이 자신의 아내를 집단 윤간한 낌새를 눈치채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맞서 싸우지 않으면 죽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일어선다.

그 과정이 눈부시다. 그는 난생 처음 동물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 두려움과 동시에 희열을 느낀다. 본연의 야성을 발견하고 억압했던 자아를 해방시키면서 고통을 축제로 전환시키는 악마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샘 페킨파 감독이 참으로 소름끼치는 리얼리티를 가지고 묘사한 이 과정을 통해 섬너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영화는 여기에서 끝난다. 당신이 신경쓸 것 없다. 남은 삶은 온전히 섬너의 몫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너무도 예의바르고 유순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재수 없다. 가끔씩은 예전의 그 무모한 싸움꾼으로 돌아가 누군가와 치고 받으며 피를 흘리고 싶다. 거칠 것 없는 한 마리 짐승으로서 본능에 따라 삶을 구가하는 위험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

<시나리오작가>

besmart@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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