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위기로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가 이번 주에 석유제품 최고가격 지정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가격을 통제해서라도 기름값을 안정시켜야 할 만큼 비상 상황이라는 것이다. 석유 가격 통제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처음이다. 부작용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 석유사업법에 따라 정부가 석유제품 최고가격을 고시할 수 있다. 문제는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과 재정 투입 증가 등의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정부의 석유 판매가격 고시 직전 주유소들이 기름을 사재기하는 문제가 생겼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23년 천연가스 도매가격 상한제를 시행했을 때는 공급업자들이 값을 더 쳐주는 아시아 등으로 판로를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같은 에너지 가격 통제의 부작용을 줄이려면 사재기나 담합을 철저히 차단하는 한편 원가와 고시 가격 차액을 보전해 주는 후속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석유사업법에 정유사나 주유소의 손실을 보전하는 지원 근거가 있지만,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일이어서 신중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면 에너지를 절약할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 고가 수입차나 대형 SUV를 모는 부유층의 기름값을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연거푸 재연장된 것처럼 한번 내린 에너지 가격이나 세금은 다시 올리기도 어렵다.
당장 중동 위기가 단기전으로 끝날지, 몇 개월이나 몇 년을 끄는 장기전이 될지 가늠할 수 없다. 에너지 가격 통제 조치를 너무 일찍 꺼내 중동 위기 장기화 때 재정으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 되지 않도록 시행 시점과 기간, 종료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는 위기 대응 재원 마련을 위해 증시 활황으로 늘어난 증권거래세와 반도체 수출 호조 등으로 증가한 법인세를 활용한 조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거론하고 있다. 전쟁이나 재난 등 비상 상황에서는 시장 예상이나 기존 정책을 뛰어넘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 개입에는 늘 부작용과 비용이 뒤따른다. 꼭 필요한 곳에 재정을 선별 투입해 아까운 세금을 허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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