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DNA가 바뀌고 있다/上]인사고과 혁명 성과급 20배差

  • 입력 2001년 1월 14일 18시 48분


【업무실적을 냉정히 따지는 국내기업의 최근 흐름은 ‘평가혁명’으로 불린다. 장유유서, 연공서열, 지연, 학연, 혈연 등 동양적 조직문화의 틀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불어닥친 이같은 바람은 앞으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기업현장을 3회 시리즈로 소개한다.】

의류업체인 이랜드는 지난해 디자이너 생산직 구매직 등의 직원들을 모두 1등부터 꼴찌까지 평가해 그 명단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그 전까지는 상, 중, 하로만 직원들을 평가했다. 99년말부터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는 이 회사는 그 평가결과에 따라 연말성과급을 0%에서 2000%까지 차등 지급했다.

장광규 상무는 “신평가제를 도입, 디자이너 33명의 1인당 매출이익을 평가한 결과 1등과 33등간에 470배나 차이가 나는 것을 보고 회사도 깜짝 놀랐다”며 “개인성과표 발표후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리젠트 증권 박상욱 과장(34). 그는 지난해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의 입사동기 10명은 대리다. 아직도 평사원인 동기도 3명이나 된다. 입사 7년 만에 동기간에 직급이 3가지로 나뉜 것이다. “연봉제 도입 이후 잘 나가는 동기는 월급을 많이 받고 또 모은 돈으로 돈을 벌다보니 서로 생활수준이 격차가 납니다. 결국 직장내 인간관계도 재편돼 생활환경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게 되더군요.”

연봉제가 실험적인 적용기간을 지나 본격적인 정착단계로 접어들면서 직급내 임금격차가 커지고 적용범위도 전 사원으로 넓어지고 있다. 실적이 명확한 영업직은 물론 인사 총무 홍보 경리 등 지원부서까지 연봉제를 도입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또 연공서열형의 평가를 버리고 미국식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식 평가제도는 성과(Performance)를 가장 중시하고 이 결과에 따라 급여 승진 인사배치 교육 퇴출까지 결정하는 것이 핵심. 보통 5등급으로 나눠지며 1등급이 10%, 2등급 25%, 3등급 40%, 4등급 20%, 5등급 5% 등으로 배분된다. 같은 등급 내에서 다시 몇 단계로 나누는 회사도 상당수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박사는 “직원을 평가하는 방법이 혁명적으로 달라지고 고과에 따라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안들이 결정된다는 것은 결국 기업의 DNA가 바뀌는 것과 같다”며 “직장인들이 기업문화나 작동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랜드처럼 급진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현대 그룹을 제외하고는 삼성 LG 롯데 현대차 등 각 대기업들은 고과에 따라 연초에 정하는 연봉이나 연말 성과급에 차이를 두고 있다. 공기업인 한국통신과 작년에 민영화된 포항제철도 연봉제와 신평가제도를 도입할 정도.

연봉제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실적(업적)’. 아예 실적으로만 평가하는 회사도 있다. 연봉제 도입 전 고과평가에서 중요시 한 회사충성도, 책임감 등의 요소는 이제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아예 평가항목에 들어있지 않은 회사도 많다.

삼성생명 영업소장들의 경우 월 수당이 실적에 따라 정해진다. 판매수당으로 10만원을 받는 영업소장과 600만원을 타 가는 소장이 있다. 상여금에서 연 7000만원의 급여 차가 나는 셈. 영업사원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코오롱상사는 연봉 외에 목표실적을 초과하는 직원은 초과이익을 회사와 나눠 갖는다. 작년에는 억대의 초과수당까지 받은 직원도 나왔다.

평가기준이 달라지다 보니 기존 평가제도에서 고과를 잘 받던 직원이 새로운 평가제도에서는 하위등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삼성물산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기존 고과에서 A를 받던 직원 중 절반이 B이하로 떨어졌다”며 “대인관계가 좋거나 상사가 좋아 고과를 잘 받던 사람들이 실적은 낮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5등급을 받은 직원은 회사를 자발적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다. 5등급을 한번 받으면 다음 3년간 연속 1등급을 받아야 중간정도가 되는데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승진도 불가능하다. 삼성전자 인사팀 이근면 이사는 “매년 5등급을 받은 5%가 회사를 자발적으로 떠나도록 인사제도가 설계돼 있다”며 “현재는 약 1∼2%가 회사를 떠나고 있지만 인력시장이 유연해지면 5%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지원부서 직원들까지 업적을 평가해 급여를 결정하면서 동일 직급 내 직원들의 급여 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같은 직급의 급여 차가 2배나 된다. 삼성물산의 경우 50%, SK㈜는 30%, LG전자는 20%정도의 차를 보이고 있다.

또 상당수 회사에서는 직급간 임금역전현상까지 흔한 일이 됐다. 삼성 롯데 제일제당 한솔제지 등이 대표적이다. 제일제당 LG전자 삼성 SDS 등은 한국식 기업문화의 핵심인 ‘호봉제’마저 완전히 폐지했다. 삼성생명도 곧 호봉제를 폐지하고 미국식 직무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병기·박중현·하임숙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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