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 개헌론을 경계한다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53분


일본의 집권당인 자민당 내 최대파벌인 하시모토(橋本龍太郞)파가 군대 보유와 교전권(交戰權)을 명문화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보도다. 개헌 방침에는 일본 천황(天皇)을 국가원수로 명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한다.

일본은 1945년 패전 이래 오늘날까지 전쟁책임에 대해 우물쭈물하며 애매한 태도로 반세기를 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1세기를 맞으면서도 일본이 ‘과거청산’ ‘역사인식’의 문제로 한국 중국 등 인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씻지 못한 가운데 돌출한 이번 하시모토파의 개헌 방침을 접하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물론 일본에서의 개헌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후 경제 부흥에 따라 일본의 경제적 역량에 걸맞은 군(軍)을 유지해야 하며 자위대라는 과도 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는 내부의 논란은 진즉부터 있어왔다. 또 미군 점령기에 천황의 지위가 실권 없는 ‘상징적’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국가원수가 천황이냐, 총리(총리대신)냐가 불분명한 측면도 있다.

이번 하시모토파의 방침안도 ‘3∼5년 안에 개헌을 관철시킨다’는 목표일 뿐이며, 일본 내의 호헌세력이 만만치 않은 점, 국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개헌이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개헌은 아직 요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자민당 내 7개 파벌 중 중도성향으로 비쳐졌던 하시모토파가 우익들이 치켜들어온 개헌의 깃발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다. 이는 중학 교과서 검정에 자민당 일부 의원이 개입해 우익들을 대변하는 점과 더불어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이달 초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범죄에 대한 국제전범법정에서 우리는 일본인들의 ‘애매한’ 역사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법정에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어도 정작 일본 정부와 언론만은 외면하다시피 했다. 일본은 여전히 태평양전쟁 중에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피해국과 당사자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과거청산에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우익인사가 주동이 된 중학 교과서 왜곡 시도에서 드러나듯이 오히려 ‘일본이 20세기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 ‘일본은 백인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려 했다’는 식의 우익사관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민당 최대파벌이 ‘우익적 개헌’에 나선 것을 우리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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