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방형남/양지의 각료, 음지의 가신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29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타임지 기자가 물었다.

“매우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단 한 사람만 옆에 있어야 한다면 누가 있기를 원하십니까.”

부시 당선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체니죠(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

존 F 케네디는 대통령이 된 뒤 같은 질문을 받자 “바비(로버트 케네디)”라고 대답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부인 힐러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취임을 앞두고 있는 미국의 새 대통령 부시와 부통령 체니의 관계는 미국 역대 어느 대통령과 부통령보다 끈끈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체니가 부시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인연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부시가 체니를 대하는 태도는 ‘아버지의 사람’이라는 과거의 되풀이가 아니다. 그는 앞으로 체니 부통령이 상원의장으로서 의회에서 활동할 때는 “그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체니가 자신의 사람임을 강조했다.

부시 당선자가 지명한 주요 각료와 참모 중에는 체니류(類)의 사람이 많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는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회의(NSC) 소련 동유럽국장을 지낸 인물로 95년 야구단 구단주였던 부시 당선자를 만나 ‘그의 사람’이 됐다.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돈 에번스는 78년 부시가 하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부터 측근 참모로 충성을 다해온 20여년 지기며,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된 캐런 휴스와 정치특보 칼 로브는 ‘부시의 친구들(FOB·Friends of Bush)’로 불리는 측근중의 측근이다.

부시 당선자는 어떤 생각에서 측근을 부통령으로, 장관으로, 백악관의 핵심참모로 기용했을까. 그는 이에 대한 답변도 내놓았다.

“주인공의 주변에 수류탄이 날아와 구르고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누군가 그 수류탄으로 달려가기를 원한다. 나는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칼 같은 친구다. 나는 그렇게 할 사람을 20명도 넘게 거명할 수 있다.”

부시 타입의 인사가 훌륭한 결실을 낳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를 대통령 후보뿐만 아니라 부통령 후보, 장차 장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참모 등 주변 인물군 전체에 대한 종합적 평가라고 한다면 측근을 요직에 기용한 부시의 카드는 당선자로서 활용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케네디는 신임하던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으로 기용했다. 로버트는 미국민의 사랑을 받아 유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부상했으나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도 남편의 퇴임을 앞두고 상원의원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미국민은 앞으로 부시 당선자가 기용한 측근에 대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한국의 측근인사는 미국과는 분명히 다르다. 현재 한국 집권층의 혼란은 대통령의 가신(家臣)이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 등 공개적인 자리에 앉아 국민에게 능력을 평가받는 대신 정당의 그늘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 빚어진 것이다.

대통령의 사람이 양지에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음지에 있어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결코 어렵지 않은데 말이다.

방형남<국제부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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