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적십자사 바로서라

  • 입력 2000년 12월 20일 18시 57분


대한적십자사(韓赤)의 장충식(張忠植)총재와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 사이에 불거진 인사문제 논란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인도주의 사업에만 전념해온 한적의 100년 가까운 역사나, 특히 72년부터 남북한 이산가족문제를 전담해온 데 대한 국민의 기대를 생각하면 한적 내부의 그 같은 분란은 정말 낯뜨거운 일이다.

그동안 장총재가 북한측으로부터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총재와 총장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번 분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장총재는 “적십자 조직의 숨통을 틔우고 후진 양성을 위해 박총장의 사퇴를 권유했다”고 하나 정작 당사자인 박총장은 장총재가 월간조선 인터뷰 파문의 수습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감정이 상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박총장은 “월간조선 파문 이후 내 이름으로 북한에 전통문이 왔다갔다했고 이산가족 방문기간에도 장총재가 내가 권유한 일본행 때문에 망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적의 위상과 명예는 최근 장총재의 대북(對北)유감서한발송, 일본‘도피’등으로 땅에 떨어져 있다. 어떻게 하든 한적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등 수백만 이산가족들의 반세기 한을 풀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 같은 역사적인 시기에 총재와 총장이 무슨 업무 때문도 아닌, 단순한 ‘개인적 감정’ 때문에 그같이 왈가불가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그러나 이번 한적 내분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으며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한적 안팎의 지적에 특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적은 두 차례에 걸친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행사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 위상과 명예가 실추됐고 그것이 인사문제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권인사가 한적총재로 내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북측의 억지주장 때문에 총재와 총장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했고 결국은 총재마저 바뀌는 꼴이 된다. 한마디로 북측에 놀아났다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하다.

할말도 못하고 문제를 쉬쉬하며 미봉하는 대북정책으로는 건전한 남북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무엇보다 눈치만 보는 정책은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려 절대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남북한 이산가족문제를 주관하고 있는 한적의 명예와 위상 실추 그리고 이번 내분은 바로 그 좋은 예다.

이번 기회에 남북관계 전반을 되돌아보며 한적이 이 지경까지 된 사유가 뭔지,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명백히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