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옛 버스안내양-여 근로자들 숨은 사랑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2분


70년대 말까지 ‘콩나물 버스’의 ‘푸시 맨’이던 버스안내양, 산업발전의 뒷전에서 냉대를 받던 공장 여공.

부산지역의 10대 20대 버스안내양과 여공 400여명은 79년 11월 ‘생명의 금고’를 결성했다. 이들은 당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한 대학생’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이 대학생은 내 친구의 동생 또는 오빠일 수도 있다”며 따뜻한 사랑을 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승객이 모두 내린 뒤 종점에서 버스에 버려진 빈 병과 휴지를 모아 팔고 부족한 잠과 싸우며 수공예품을 만들어 바자를 열었다. 자선찻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 해 12월 100만원의 성금을 당시 서울대병원에 심장판막증으로 입원 중이던 20세의 부산대생 황외석씨(40·현 회사원)에게 전달해 꺼져가던 생명을 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빈 병 하나, 올 하나에 정성을 쏟은 결과 매월 은행통장에는 땀과 노력의 대가가 쌓였고 그 통장을 ‘생명의 금고’라고 이름지어 지금까지 선행을 해오면서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이런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가 2000년의 해를 넘기며 뒤늦게 알려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시내버스 자율화조치로 버스안내양이 없어지고 노동집약적인 공장이 하나 둘 없어지면서 여공들이 줄어든 85년 이전까지 ‘생명의 금고’는 600여만원의 기금으로 4명의 심장판막증 환자와 9명의 가난한 환자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금고가 어려움에 처하자 적십자사 부산지사에서 88년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기금 5000만원을 내 놓으면서 다시 사랑의 불길이 힘차게 타올랐다.

발족 당시 회원 20여명을 중심으로 현재 200여명의 회원들이 매월 3000원씩의 성금을 모아 운영중인 이 금고는 88년부터 현재까지 183명의 저소득 환자에게 1억5500만원의 수술비 및 진료비를 지원했다. 심장병뿐만 아니라 골수염 신부전증 백내장환자에게까지 수술비를 지원해 왔다.

그동안 한번도 공식 행사를 갖지 않은 이 금고는 14일 오후 ‘꺼져가는 이웃의 생명을 살리자’는 주제로 수혜자와 후원자가 자리를 함께 하는 첫 만남의 행사를 부산진구 부전동 적십자회관에서 갖는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부터 매월 후원금을 보내오고 있는 일본인 안도 마사오미(安東政臣·53)도 참석한다. 금고 탄생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강옥자씨(44·전 국제상사 근무)는 “어려울 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은 한 생명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부산〓조용휘기자>silen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